<글쓰기에 대하여>를 읽고
실제 삶을 기록해 놓은 글에는 마법과 같은 무언가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 글들이 살아남아서 우리의 손에 들어온 걸 보면 예상치 못한 보물을 전달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어쩌면 부활처럼도 보이고요.
- 글쓰기에 대하여 186p -
“글짓기 대회에 나갈 사람?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갈 사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닌 시절에는 주기적으로 사생대회나 백일장 대회가 열렸고, 나는 늘 백일장 대회에 손을 들었다. 내 그림 수준은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했기에, 노련한 붓놀림 대신 그 나이가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글을 썼다. 꾹꾹 눌러쓴 정성 때문인지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겁 없이 번쩍번쩍 손을 드는 시기를 지나서 어떤 순간에도 손을 들지 않는 아이가 되었고, 쓰기의 역사도 멈추었다.
친정에 가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일기장과 상장을 만난다. 쿰쿰한 세월의 냄새가 가득한 일기장을 열어 유년기의 추억한다. 말도 안 되게 유치한 내용과 미숙한 글솜씨에 피식 웃으며, 당당하게 손을 들던 용기와 그 용기에 힘을 더한 얇은 상장의 위대한 힘을 느껴본다.
그 당시 상장에 의존하지 않고, 손들 용기를 잃었어도, 내밀한 글을 계속 써 내려갔다면 그 기록은 삶에 어떤 마법을 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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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옛 상표가 인쇄된 낡고 묵직한 상자가 도착했다. 수신인은 엄마이다. 맛깔스러운 밑반찬을 보낸 건 아닌지 기대하며, 낯선 상자를 조심스럽게 개봉했다. 꽤 큰 상자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빛바랜 편지와 일기장이었다. 익숙한 물건에 이내 경계심을 풀고 상자를 거실 바닥에 쏟았다. 편지 사이사이 먼지가 폴폴 날리며, 그리운 세월의 냄새를 건넨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나눈 시시콜콜한 편지와 교환 일기 그리고 은밀하게 써 내려간 자물쇠 달린 일기장을 하나씩 읽어본다. 오랜 시간 꼬깃꼬깃 접혀 있던, 작고 얇은 종이를 펼치는 것은 단단하게 굳어버린 내 마음을 녹이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망부석이 된 것처럼 앉아서 두서없이 뒤죽박죽 부활하는 나를 반겼다.
친구와 꽤 농밀하게 나눈 엄청난 분량의 일기장과 편지에는 아무런 주제도 없고 문맥의 일관성도 없었다. 그런데도 장문의 글을 매일 쓸 수 있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일기장의 자물쇠를 조심스럽게 열고, 그 당시에도 정성을 다한 내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록은 중 2부터 4년간의 시간을 아우르다가, 인생의 중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는 고3 때 아쉽게 멈췄다. 무섭게 공부에 매몰한 시간과 즐거운 대학의 추억을 끄집어낼 냄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완벽히 잊고 있던 내 기록이다. 하지만 엄마는 꽤 여러 번 이사하면서도 차마 쓰레기 같은 그 종이들을 버리지 못했다. 내 글을 대하는 상대의 마음을 통해, 나보다 내 삶을 더 사랑하고 아낀 마음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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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정신없이 바빴고, 다른 중요한 일이 많았다. 차분히 앉아서 유치한 글 따위 쓰는 것은 낭비일 뿐이었다. 대신 매일 빼곡하게 체크 리스트를 만들고, 시커멓게 지워갔다. 열심히 살았지만, 되돌아보는 삶은 시커먼 재같이 매캐한 냄새가 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엄마가 되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종이와 펜이 대신 컴퓨터를 사용했다.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면서 갑자기 내 일상을 기록하고 싶었다. 다시 쓰게 된 글에는 아이를 통한 내 삶이 그려졌다. 어차피 기록도 단편적인 기억일 뿐이지만, 그렇게라도 소중한 순간을 잡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 욕심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가 하나에서 둘 그리고 셋이 되자, 글쓰기는 사치가 되었다.
대신 매일 진실된 마음으로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아이의 크고 맑은 눈동자 안에 내가 있었다. 눈부처였다. 엄마 나이 7세가 되었을 때, 다시 글을 썼고 오늘도 글을 쓴다. 아이의 삶을 통해 나를 이야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내 삶을 쓰고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매일 써 내려가는 짧고 긴, 얕고 깊은 글을 통해 시커먼 볼펜의 자국 속에 숨겨진 내 삶이 드러났다. 세 아이가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일상 속에서도 나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특별한 목표 없이 대단한 기대 없이 끼적인 글이 쌓여 3년이라는 시간의 탑을 세웠다. 탑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조금씩 내 욕심이 더해지고 사람들의 입김이 세진다. 글을 쓸 때는 글의 주제가 명확해야 하고, 독자가 정해져서 나에서 타인을 향한 글로 나아가야 한다다. 글을 통해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침범해서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를 향한 글을 명확한 주제 없이 쓴다. 먹고 씻고 입는 이유를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글 쓰는 이유와 목적 없이 자연스럽게 시간이 되면 글을 쓴다. 한 끼 굶어 허기를 느끼거나, 씻지 않아서 찜찜한 머리카락처럼 글을 쓰지 못하면 불편할 뿐이다. 색다른 표현, 다른 형태의 글 그리고 평소 쓰지 않은 글감에 대해 종종 고민한다. 마치 매일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끔 멋지게 차려입고 함께 식사할 사람을 생각하듯, 내 글을 읽는 사람도 생각한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고 끼니를 거르거나, 만날 사람이 없다고 옷을 벗고 있지 않는 것처럼 묵묵히 글을 쓴다. 그저 편안하고 꾸밈없이 쓴다.
<글쓰기에 대하여>에서는 “작가가 글을 쓰는 건 바로 '독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아닌, '당신'인 독자를 위해. '친애하는 독자'를 위해.”라고 말한다. 분명 글을 쓰는 행위에는 글을 읽어주는 대상이 있어야 의미와 가치를 더한다. 하지만 독자를 타인이라고 한정할 필요는 없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글을 읽고, 마침표를 찍은 후에도 그 글을 가장 많이 읽고 고민한다. 글쓰기는 바로 ‘친애하는 나’라는 독자를 향한 내밀한 고백이다.
글 쓰는 이유도 모르고, 특별한 목적 없는 글을 매일 꾸역꾸역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그냥….”
오늘도 '그냥 그냥' 쓰는 삶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