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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일상 Apr 17. 2022

코로나가 준 선물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고

“앞으로 알아낼 것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만약 이것 저것 다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럼 상상할 일도 없잖아요!”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p.20>


놀이터를 신나게 뛰어다닌 둘째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놀 때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아이라 평소에도 자주 있던 상황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는 기타와 축구 수업을 다녀와서 저녁을 먹는데 수저도 들지 않고 멍하니 밥을 쳐다보고 있다. 오랫동안 집에서 쉬다가 학교생활에 적응하려니 오죽 피곤할까 싶어 아이 옆에 앉아 아이의 수저를 대신 들었다. 아이는 겨우 저녁을 먹고 소파에 누워 쉬는 사이에 나도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졸리지. 잠시만 기다려. 체온이나 한 번 재 볼까?”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체온을 재고 자가 진단 키트를 꺼내 코를 찌르는 것이 일상이 된 때라 별생각 없이 아이에게 체온계를 건넸다. 띠딕~


“엄마, 38.5도!”


열이 난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진단 키트를 챙겨 아이를 불렀다. 온 가족이 모여 하얀 종이의 색이 변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 줄. 그럼 그렇지! 가족들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이미 밥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밥을 오물거리다가 진단 키트를 무심코 보았는데 진한 줄 옆에 연하게 한 줄이 더 생겨있다. 이리저리 키트를 아무리 돌려보아도 선은 더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여보~~~~”


입안에 밥을 겨우 넘기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 애쓴 시간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가정 보육을 하고 급식도 하지 않으며 버틴 시간이 억울하기까지 했고 앞으로 겪어야 하는 상황을 알지 못하니 두렵고 무섭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무서워할까 봐 재빨리 눈물을 닦으며 힘없이 남은 밥을 싱크대에 부었다. 


둘째는 인싸를 증명하듯 우리 집 최초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 남편, 첫째 아이까지 줄줄이 대세에 합류했다. 확진자가 식구의 반 이상이 되자 둘째는 격리 하루 만에 방에서 나올 수 있었고 증상이 없는 막내가 졸지에 격리자가 되었다. 아이를 혼자 방에 둘 수 없으니 나는 마스크를 두 개 쓰고 손 소독제를 쉴 새 없이 바르면서 격리 생활을 이어갔다. 아픈 아이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는지 확인하며 아프지 않은 아이는 추가 감염이 되지 않았는지 살피느라 종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몸이 아픈 것보다 심적으로 더 힘든 시기였다. 나흘을 건강하게 버틴 막내도 결국 닷새째 되는 밤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픈 것은 속상했지만 마스크를 벗고 홀가분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이틀 정도 고열만 났을 뿐 특별한 증상 없이 건강을 회복했다. 콧물과 기침으로 괴로운 감기보다 훨씬 수월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처음 겪는 아픔과 통증이 상당히 낯설었지만 이겨내기에는 충분했다. 병원에서도 경미하게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사람마다 아픈 정도가 천차만별이라 섣불리 판단할 수 없겠지만 ‘이 정도’에 벌벌 떨며 움츠리고 살았던 시간이 허망하게 다가왔다. 


격리 기간이 끝나고 아이의 등굣길을 함께 한다. 집 앞 산수유나무에 샛노란 꽃이 눈길을 끈다. 롱 패딩이 부담스러울 만큼 날은 포근했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나를 무겁게 누르던 억울한 마음이 따스한 햇볕에 녹아내린다. 막연한 두려움 대신 당당하게 일상을 꾸려갈 힘이 감사한 마음에 깃든다. 아이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홀가분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기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남을 긴 터널의 끝에서 마주한 햇살을 통해 깨닫는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다시 터널을 만나겠지! 터널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둠이 두렵지 않을 거야. 터널은 어둡지만 편리함이라는 선물을 주잖아. 삶은 모르는 것 투성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 산재하지만, 알지 못하기에 마음껏 꿈꾸고 정성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거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을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기보다 마음껏 상상하며 행복을 그리고 희망을 쓸 수 있길. 가끔 터널 대신 높은 산을 오르며 멋진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용기도 낼 수 있길.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꽃을 그려내는 능력을 키워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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