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사랑하는 부모를 가진 사람은 결코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겨요.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p.360-
할머니~ 나야…
목은 어때? 어제 전화통화가 힘들 정도로 목이 잠겨있어서 계속 걱정했어.
동트는 시간,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부지런한 우리 할머니도 벌써 일어났겠지? 아프니깐, 오늘은 늦게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전화 통화를 할 때는 흔한 안부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데 편지를 쓰니 넓은 여백만큼 할머니에 대해, 할머니와 함께 한 순간을 생각해볼 수 있어 참 좋아.
할머니 나이를 계산하다 보니 45세에 나를 만났더라고.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에 손녀를 만났다니... 힘든 시절, 다섯 남매를 키우고 손주들까지 돌보느라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지팡이를 짚고 걷고 방바닥을 밀며 지내는 모습이 갑자기 떠오르네. 나를 안아주고 맛있는 밥을 지어주던 크고 건장한 모습만 익숙해서 내가 부축해야 하는 작고 여윈 할머니가 참 낯설어. 꼬마 선경이가 세 아이 엄마가 되었는데 할머니는 이전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
문뜩 할머니가 생각날 때가 있어. 그러면 전화를 해. 그때마다 활기찬 목소리로 “경아~”라며 반기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참 좋아. 힘겨운 삶을 잠시 멈추고 가쁜 숨을 고르는 느낌이거든.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매번 똑같고 특별하지 않지만, 할머니와 이야기하면 속상했던 마음이나 힘겨운 순간도 눈 녹듯 사라지고 따뜻한 에너지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야. 늘 나를 걱정하고 내 가족의 안부를 물으면서 당신의 삶을 물으면 잘 지내니 걱정마라며 얼버무려. 괜찮다니 감사한 마음이지만 혼자 먹는 밥상이나 혼자 TV 보다 잠들고 눈을 뜨는 하루를 상상하면 괜히 속상하고 마음 한 켠이 아려와.
코로나 이후 한 번도 할머니를 보지 못했잖아. 코로나 유행 직전, 잠시 할머니 집에 들러 명절마다 할머니 보러 와야겠다 다짐했는데 그 후 3년을 만나지 못했어. 그때 다리가 불편하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할머니는 푸짐하게 점심을 차려주었잖아. 할머니 집에 왔는데 밥은 한 끼 먹어서 가야 한다는 말이 지금까지 생생해서 행복하면서도 괜히 속상해져.
지난 2월에 학사모 쓴 할머니를 신문과 뉴스에서 보고 너무 반갑고 놀라워서 보고 또 보며 지인들에게 자랑했어. 멋진 할머니의 모습이 나를 응원하는 느낌이었어. 할아버지가 요양원으로 갔을 때인가? 할머니 집에 가면 거실 작은 책상에 삐뚤빼뚤 글씨 연습을 한 초등학생용 공책이 있었어. 더듬더듬 책을 읽는 할머니에게 한 번도 응원한 기억이 없더라. 제대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는 시절에 태어나 평생 까막눈으로 살던 할머니의 삶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어. 고등학교 진학이 설레고 두렵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배움을 시작했는지 궁금해졌어. 늘 정성을 다해 당신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주어서 정말 감사해요. 건강하게 대학까지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만학의 꿈을 찬란하게 꽃 피우길 기도할게.
혼자 지내는 할머니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고령에, 혼자 지내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 점점 목 상태가 나빠져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대도 계속 “괜찮다”라는 말만 반복해. 담담하고 차분한 할머니 모습에 내가 호들갑스럽게 느껴졌고, 금방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 믿으며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어. 역시 우리 할머니 대단해!!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할머니를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 무척 신나고 설레. 맛있게 고기도 구워 먹고 예전에 갔던 중국 요리도 먹으러 가요.
같은 하늘 아래 숨 쉬는 것만으로 무한한 힘을 주는 할머니
지금이 제일 좋은 때라며 힘겨운 내 삶을 포근히 안아주는 할머니
끝없이 전하는 사랑에 내 하루를 더 잘 살게 하는 할머니
내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할머니
받은 것만큼 돌려줄 수 없어 미안하고 속상한 할머니
끼니 잘 챙기고 건강하게 지내라는 말 밖에
자주 연락한다는 말만 하는 나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되지만
당신에게 받은 무한한 사랑으로
내 삶을 환하게 비추고 아이들을 포근하게 품는 것을
당신이 나에게 진짜 원하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매 순간을 힘차게 누리며 살아가겠습니다.
너무 사랑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 새벽, 글 쓰는 내내 펑펑 울게 하는 사람이 당신임을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