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부모님께서는 일 년에 두번 봄과 가을에 "해치" 라는 걸 하셨다.
이름도 신기한 해치의 어원이 어디서 비롯된 것 인지는 아직도 그 누구도 명쾌히 답을 내어주지 못한다. 이 말은 곧 "해치"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와 엄청난 불일치가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찌들린 삶, 아둥바둥 하던 일상의 것들을 내려놓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더러는 귀한 나이방도 쓰고 나들이를 가신다.
평소와 다른 음식의 종류와 술 푸짐한 먹거리가 가득한 날,
마을 뒷산은 흥에 겨운 노래소리가 장구 장단과 맞춰져 동네를 감아 신나게 흐른다.
아이들은 덩달아 신이 나서 맛있는 음식들을 얻어 먹는 호사를 누릴 때도 있지만 멀리 관광차를 타고 가실 때는 출발과 도착만을 바라보고 가끔 부모님의 손에 쥐어진 관광상품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빼앗겨 모든 걸 잊어버리곤 했다.
이렇듯 부모님의 "해치" 를 떠올리면 하나같이 신기함 밖에 없었고 못 보던 나이방도 끼신 부모님을 보면 별세계를 보는 듯 했다.
이런 문화를 보고 자란 우리의 세대가 2016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해치"를 감행했다.
구성원은 고향의 여고 친구들이다.
영자라는 친구는 하우스를 하고 있다.
특유의 포근함과 포용력이 같은 친구라도 꼭 엄마의 사이즈만큼 되는 친구다.
새벽부터 하우스에 전념해야 하는 수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인데 전국 팔도에 있는 친구들을 끌어 모우는 재주가 비상하다.ㅡ
올해도 그 친구는 번개를 쳤다. 누구처럼 번개도 번개처럼 신속한 것도 아니고 느릿느릿 번개를 친다. 와중에 나처럼 성질 급한 친구들은 몇 명 쓰러지고 토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화 한번 내지도 않고 내색도 않고 묵묵히 해치를 준비하면서 한 친구라도 부담없이 모일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지금처럼 살기좋은 세상에 1인당 얼마씩 회비만 내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인데 그 친구는 부침개반죽ᆞ김치ᆞ떡가래ᆞ잡곡찰밥을 마련하고 또 어떤 친구는 귀한 산나물 등을 발효시켜 만든 장아찌 종류를 갖고 오고 또 어떤 친구는 새우ᆞ삼겹살ᆞ떡등 말하지 않아도 척척 준비해서 우리는 조리해서 먹기만 하면 되는 정도로 준비해 온다.
그리고 막상 먹을려고 할 때도 팔을 걷어 부쳐서 마치 언니가 동생을 챙겨 먹이듯 그렇게 조리를 해서 친구들을 대접한다.
우리의 해치는 바람 부는 고향의 가을 바닷가에서 시작되었다.
바람이 시샘하듯이 부는데도 부침개를 부치고 삼겹살을 굽고 여러가지 준비해 온 맛난 음식들을 먹고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마도 연렁대는 십대 후반쯤 되는 행동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며 웃고 난리를 친다.
또한 멀리 동두천에서 여러가지 그릇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가 막걸리 담아 마시라고 주전자와 술잔을 택배로 보내주기도 했다.
이것이 시골에서 자란 우리네 인심인 것이다.
작은 것에도 감동하며 고마워하는 정서!
그리고 최씨고가를 둘러보고 마을과 함께 시간을 보내온 돌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별 짓을 다 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웃을 수 밖에 없는 천진한 소녀들의 나들이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과 억새들의 축제인 양 소란스럽지만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무슨 거대한 이벤트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고향 친구들 얼굴보고 웃을 수 있는 하루의 시간투자에 온몸의 엔돌핀은 춤을 추고 행복은 해바라기 같은 미소로 우리를 보디가드 하는 하루가 되었다.
친구!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순수한 만남이 그저 즐거움의 노래가 되고 맑은 메아리가 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들 인생도 무르익어 간다.
이 가을,
우리는 부모님들의 해치문화를 재현해 보았다.
아마도 해치는 소풍 또는 나들이일 것이라고 우리끼리 결론을 지어 보았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사라진 해치를 어슴푸레하게나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여유로움인가!
힘들고 고통스런 인생사 가운데서도 풍류를 아는 우리 조상님들의 삶의 풍성함을 느끼고 알고 마음껏 누렸던 하루이다.
이것은 분명 시골에서 자란 가시나들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사를 잊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그 하루는 아름다운 소풍이자 나들이이며 분명,
"시월의 어느 멋진 날"
이라고 감히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