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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cea Mar 24. 2021

무제

글을 쓰는 이유

#1

가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글을
혼자 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써야만 했다. 
시는 매일 그의 마음을 쿵쿵 두드렸고
그는 그것을 꺼내놓아야만 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었고 
그래야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잃었다.

- <로맨스는 별책부록> 중에서


#2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3

나는 사람들이 읽지도 않을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생각만으로

글로 풀어낼 이야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한 줄 한 줄 정성스레 써내려 가는 시간만으로

다 써 내려간 글을 다시 읽어보며 한 글자씩 고쳐간다는 것만으로

나의 설렘은 충분하다.


누군가가 내 글을 마주한다면

마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읽어 내려간다면

한 글자, 한 문장, 한 페이지, 하나의 글을 곱씹는다면

그 글이 그에게 남아 때때로 떠오르는 감동이 된다면

감히, 그런 상상만으로도 과분한 행복.


글은 하나의 세계를 눈 앞에 펼쳐놓는다.

내가 만든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그에게 닿기를

그 세상의 바람과 향과 온도와 질감을 그가 느낄 수 있기를

그가 그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내디뎌 여행할 수 있기를

누군가가 내가 만든 세상에 한동안 머물다 떠나기를

그의 세상의 것들과 이 세상의 것들을 비교해 보기를

새로 맞이한 세상의 흙과 물과 음식과 과일을 만져보고 맛볼 수 있기를


그는 그 세상의 어떤 것을 좋아했을까?

더러, 그가 싫어하는 것들도 있지 않을까?


나는 매일 밤, 하나의 세계를 펼쳐놓고

오지도 않을 그를 위해

가장 풍경 좋은 언덕에 테이블을 깔고

온갖 종류의 술과 음식과 과일을 준비하고

분위기를 더할 촛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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