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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cea Jul 11. 2020

부쿠레슈티에서 집시를 만나 깨달은 것

그곳에서 집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고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에서 잠시 공부를 한 적이 있다.

낮에 대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여러 나라의 유학생들과 함께 놀곤 했다. 특히, 립스카니(Lipscani)라는 카페와 식당 그리고 클럽들이 밀집되어있는 곳에서 맥주를 마시곤 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 유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어느 날, 나는 어김없이 친구들과 야외 테라스가 있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테이블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다가왔다. 외모와 차림새를 보니 그 아이는 집시(Gipsy)였고, 한 손에는 꽃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친구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가 봐도 꽃을 팔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 아이는 말없이 꽃을 내밀며 5 Lei (한화 약 1,500원)을 달라고 했다. 루마니아 현지 친구들은 그 아이에게 사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는 일부러 그 아이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포함한 외국 유학생들에게 영어로 찌간(Țigan, 루마니아인들이 집시를 부르는 말)과는 말을 섞지 말라고 말했다. 상황을 잘 모르던 우리는 그저 루마니아에는 집시가 많기때문에 그러는 거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말에 따라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 있던 중년의 미국인 남자 두 명이 그 여자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는 꽃을 사고, 50 Lei 지폐를 내밀면서 잔돈은 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아이는 자신이 입은 원피스를 벗고는 소리를 지르며 나체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꽃을 산 미국인 남자들에게 스킨십을 한 뒤, 옷을 다시 입지 않고 한 손에 쥔 채 그 자리를 떠났다. 나와 친구들은 그 장면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루마니아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봤지? 집시는 사람이 아니야, 짐승이야.


 나는 한동안 그 말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루마니아에서 만난 대부분의 루마니아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집시를 싫어했다. 나는 루마니아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들은 집시에게만 유일하게 차별을 가했다. 아마 여러 역사적인 이유나, 정치, 사회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그 점이 상당히 안타까웠다.


인간이 갖는 한 가지 가치는 부끄러움이다. 수치를 아는 인간은 쉽게 죄악에 떨어지지 않는다. 
- 탈무드

수오지심(羞惡之心) :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다. 혹은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동물이다.
- 마크 트웨인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을 인간으로서 구분 짓는 것은 '수치', 즉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었다. 물론, 저 말들에는 인간 행동의 윤리적인 잣대로서의 의미가 클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에 대해서도 그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내포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그 여자아이는 고등학생으로 보일 정도의 나이였다. 그 아이는 다른 사람 앞에서 나체로 있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끄러운 일인 것을 몰랐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난 루마니아 집시 아이들은 대부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았다. 맥도널드에 들어와 남들이 버리고 가는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고, 관광객들에게 햄버거를 사달라고 하고, 버려진 담배를 피우는 등의 행동들이 단지 그들이 돈이 없어서일 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들에게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야 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다면, 혹은 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았다면 이런 일들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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