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rcea Jul 12. 2020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이유


 언젠가 연인으로부터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오빠는 왜 화를 내지 않아?

 

 왜 화를 내지 않느냐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받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가 화를 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내겐 그 모습이 귀여웠을 뿐이고, 그녀에게 내가 화를 낼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얼마 전 자신이  내게 한 행동과 말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충분히 화를 낼만한 이유였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화를 내면 곧장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녀는 자신은 매우 진지하다며 혹시라도 화가 나면 꼭 화를 내달라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며칠 후, 그녀가 카페에서 그 날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선뜻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날의 일을 한 번에 이해시켰다. 

오빠가 나한테 화를 내지 않는 게 불안해.
마치, 꾹 참았다가 언젠가 한 번에 터질 것 같아.

 

 그녀는 불안했다. 충분히 화가 날 만할 일임에도 내가 화를 내지 않으니, 언젠가 그 모든 게 한 번에 터지면 우리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그녀에게 내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첫째, 나는 웬만한 일에는 화가 나지 않는다. 나는 군대에서 교도 헌병으로 실제 범죄자들을 관리했고, 그 경험들은 내가 꽤 많은 일들에 불평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을 형성하도록 도와주었다.

 둘째, 나는 화가 나면 대화를 선택한다. 내가 초등학생 때, 지금도 잊히지 않는 사건을 한 번 겪었다. 같은 반 친구끼리 싸움이 났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그 친구들을 교실 앞에 세워두고 우리를 바라보며 하셨던 말이 있다. 

욕설과 폭력은 내 주장에 근거가 부족할 때,
강제로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비겁한 행위야.
선생님은 너희들이 비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갈등은 언제나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


선생님의 말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내가 화를 내지 않는 건 우리 관계에서 강제로 내가 원하는 걸 관철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든 나쁜 마음보다 크다. 만약, 내가 화가 나더라도 나는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화를 내면서까지 그녀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다. 충분히 대화를 하면 그녀도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인데, 굳이 내가 그 순간에 화를 내면서까지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절대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내 말이 끝날 즈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나는 그녀에게 내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가 언젠가 한 번에 터뜨리려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며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쿠레슈티에서 집시를 만나 깨달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