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생 Sep 25. 2022

단골 서점이 없는 사람이라면

#3. 휴남동 서점을 추천합니다

최근에 읽었던 책중에 가장 좋았던 책은 단연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였다.

읽는 내내 휴남동 서점의 단골로, 함께하는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책이 끝나면 더 이상 서점에 머물 수 없음이 아쉬워 아껴 읽었을 정도.


소설 속 주인공은, 어떤 관계로 맺어져 있냐에 따라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누구에는 깊숙한 상처를 내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한번 무언가를 해볼 동기가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어떤 시간엔 물렁했고, 또 어떤 시간에는 누구보다 단단한 모습을 가진 사람.

관계에 따라서, 시간에 따라서 이토록이나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게 꼭 현실 같아서 조금은 씁쓸해하며 읽었던 것 같다.

마냥 비난하지도, 또 응원하지도 못하면서.


실제로 누군가와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서, 또 어떤 관계로 함께 했는지에 따라서 같은 사람에 대한 기억임에도 완벽하게 다를 때가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참 어렵다.

나는 그 사람을 그 순간 그 관계로 겪어보았을 뿐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어떻게 변해갈지도, 또 다른 관계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도 결코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저는 가끔 제가 쓸모없는 인간인 것처럼 느껴져 절망하곤 해요.
특히 저에게 호의를 베풀고, 관심을 주고, 사랑을 주던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만큼 불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기어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사람인가, 나는 겨우 이 정도의 사람인가 싶어 마음이 마비가 돼요.
마비 끝에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곤 해요.
아무리 애를 써서 나아가려 해도 종착지는 평범한 인간일 뿐인 거예요. 평범한 인간종에 속하는 나는 불가피하게 타인을 슬프게도 아프게도 하는 것일 뿐이라는.
우리는 웃음을 주고받는 동시에 아픔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거라는.


그럼에도 이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건, 위와 같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끔 스스로에 절망하지만 그럼에도 그 자체의 본인을 받아들일 줄 아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몇 년째 보지도 못한 엄마와 마음속으로 다투는 것만으로도 영주는 벅찼다.
그녀는 마음속 파도를 잠재우는 데 온 에너지를 다 쓰고 있었다. 몸을 둔하게 움직이며 어디 아픈 사람처럼 서점을 서성이던 영주에게 민준의 의기소침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 문제에 깊이 함몰돼 있는 사람은 제아무리 이타적인 사람일지라도 결국 타인에게 무심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 문제에 함몰된 순간 타인의 일에 무심 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모든 게 다 여력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점점 더 짙어진다.

양보나 배려 같은 것들은 더더욱.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영화를 보면서 민준은 단순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영화 속 인물들은 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거였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등장인물의 선택에 있었다. 그렇다는 건 우리 삶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우리 삶을 이끄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선택인 것이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민준은 문득 자기 역시 그때 포기를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을 벗어나겠다는 선택.


이 부분을 읽고는 언젠가 봤던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이혼을 다룬 프로그램이었는데, 그곳에 출연한 상담 선생님이 이혼 가정의 어린 자녀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엄마는 결혼생활을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을 따라 선택을 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 용기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날로부터 아이에게 엄마의 이혼은 감춰야 하는 무언가가 아닌 용기 있는 결정이 되었을 테니, 

분명 그들의 앞으로는 많이 달라지겠구나 생각했다.

엄마를 원망했을 순간들에 원망이 아닌 응원을 할 테니 말이다.

세상에는 선택을 하는 사람보다 그 선택을 미루거나 혹은 끝끝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나 역시 그렇다.

요즘의 나는 선택을 못하고 기로에 서서 고민만 했다가, 지금은 그조차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중이다.

신중함과 비겁함은 분명 다르다.

나는 지금 신중한 게 아니라 비겁하다.


“네……. 그래서 요즘 전, 난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기엔 너무 유약한 인간이구나, 하면서 스스로한테 실망하고 있는 중이에요.”


비겁한 와중에 읽게 된 문장에 공감했다.

유약한 인간인 와중에 해야 할 일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단단한 인간이 될 때까지 그 어떤 것도 기다려주지 않기에, 삶은 고해가 분명하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지난 제 경험이 가르쳐준 건 이 정도예요.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 나를 위해 일을 하니 대충대충 일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이, 도대체 내 직장을 어쩌면 좋을까? 여서 더더 깊숙하게 들어온 문장이다.

놓아버리자니 아쉽고, 붙들고 있자니 이곳에서의 삶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일을 하는 와중에 행복을 느끼지는 않지만, 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것들로부터 오는 행복은 크다.

이걸 일이 주는 행복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내 행복에 내 일이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이라 도전하라는데, 모순적으로 그렇기에 마음껏 결정하기 어렵다.

핑계 같지만 인생도 한번 기회도 한 번이니 말이다.


저는 일을 계단 같은 것으로 생각했어요. 제일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밟고 지나가는 계단.
하지만 실제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 내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밥이요.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나는 일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그렇기에 특별한 가치를 두지 않았다. 일 안에서 자아를 찾고 싶지도, 워커홀릭이고 싶지도 않았다. 삶의 의미와 행복은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서 찾는 편이었다.

그런데 일이 밥이라니!

좀 당황스럽다. 하지만 빈도로 생각하면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저는 많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이곳에서 일을 하며 조금씩 더 나누고 베풀고자 했어요.
네, 전 나누고 베풀자고 굳게 다짐해야만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에요.
원래 태어난 바가 품이 크고 너그럽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요.
이곳에서 생활하며 저는 ‘앞으로도’ 계속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거예요.
책에서 읽은 좋은 이야기들이 책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하고 싶어요.
 내 삶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도 남에게 들려줄 만한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주인공은 솔직하다.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고, 본인의 약점조차도 드러낼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세상이 좋은 곳이지만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결국 마지막엔 책에서 읽은 좋은 이야기들이 책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아주 강한 사람.


요즘 엠비티아이 과몰입 중이라 한번 생각해 봤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왜인지 INFJ 일 것만 같다. 혹은 ISFJ.

그래서 ESTP인 나는 이 주인공이 하는 생각들이 선택들이 새롭고 좋았다.

정말 이런 서점이 존재한다면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종종 꺼내볼 예정이다.

아마도 사라지고 싶을 때마다 꺼내 읽게 될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사라지고 싶을 때, 잠깐 책을 펼쳐 휴남동 서점에 숨어버리려고.

작가의 이전글 나의 100일 프로젝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