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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Sep 26. 2022

언제쯤이면 화를 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4. 화가 난다고 화를 내는 게 이제는 부끄러워서

언젠가 갔던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내 맥을 짚어보시더니 말씀하셨다.

"화가 참 없으시네요."

정답이라고 답해드렸다.

나는 화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역치가 객관적으로 남들보다 매우 높이 있는 듯하다.

화라는 감정 자체가 없지는 않지만, 드러내 보일만큼의 정도까지 올라오는 일은 극히 드물다.

화낼  없건 인생이었다기보다 화를 내는  효율적이지 못하거나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지 하기 때문에 굳이? 싶은 마음이 크다.


화를 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내는 화의 무력함을 알기 때문이다.

보통 가까운 사람이 하는 행동이 이해가  되거나 답답할  화가 나는데, 감정과 목을 써서 화를 내도 내가 바꿀  있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구태여 소모적이고 싶지 않은 것이 제일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나는 쉽게 상처받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이 상처로 남아 본 적 없는 천성을 가졌고, 그렇기에 남들에게 내 말이 얼마의 상처가 될지 모르던 날들이 있었다.

긴 세월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만큼을 살아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타인의 말을 기억하고 또 그 말에 상처받으며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의 말이 나를 다치게 하지는 못하지만, 내 말이 상대에겐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을 알게 된 이상 화를 내기가 어려워졌다.

뭐랄까.. 나는 갑옷을 입은 상태인데, 상대는 잠옷만 입고 있는 것 같아서 타격할 수 없는 느낌?

비겁해지는 기분이라 차라리 화내기를 포기해버리곤 한다.


마지막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화를 느끼는 이유와 타이밍이 남들과 조금 다름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로 남들이 서운함을 느끼는 지점에서 나는 화가 났다.

누군가의 무책임함을 보았을 때, 본인의 감정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고 나한테 영향을 끼쳤을 때, 나한테 감정적으로 의존하려 할 때 등.

가까운 사람의 이런 행동은 나를 슬프거나 서운하게 하기보단 화나게 만든다.

그렇기에 나의 화에 가장 주가 되는 감정은 답답함이다. "왜?"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답답함을 못 이기고 화를 내 버린다.

"도대체  그런 거야?! 이렇게 이렇게 하는 방법도 있고, 이렇게 이렇게 했어도 되었을  같은데 도대체  그랬냐고!?" 주로 화를   나의 대사이다. 이처럼 내 화는 조금은 월권 같기에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만 한정적으로 분출된다.

모르는 사람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 뭘 해도 화가 안 난다.

엄청난 무례함을 보여도 솔직히 화가 나지는 않는다. 납득하지 못하겠는 무례함에 굳이 반응하기 귀찮다는 게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럼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배운 도덕이 없구나, 살면서  사람이 받아본 대접이 저만큼 뿐이구나.'  편하게 생각해버리고 만다.

물론 가만히 듣고 있기보단 무례함에 대적해 지지 않고 싸우긴 하지만, 그게 화가 나서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었겠다 싶다.


여하튼 화내지 않고 사는 편인데 오늘 아주 오랜만에 화를 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에게 말이다.

엄마는 나와 달리 내가 하는 말을 전부 기억하고 곱씹으며 아파하는 사람이라 엄마랑은 더더욱   싸운다.

싸우더라도 가시 돋친 말은 하지 않는다.

오늘도  기준 아주아주 약하게 좋은 말로 싸웠지만, 엄마의 맘속엔 어떻게 기억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후회스럽다.

한 번을 참으면 되는데 그 한 번을 못 참은 스스로가 한심하고, 짜증 난다.

도대체 언제쯤 이만 나는 그 한 번의 순간에 화를 누를 수 있어질까?

스스로가 미운 이런 날들이 많아져야 가능한 일이겠다 싶다.


부디 그날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

화를 내는 행동 끝에 남는 부끄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원망을 느끼는 일을 이제는 좀 그만하고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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