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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Sep 28. 2022

나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6. 내가 꼰대라니

아르바이트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화상으로 강의를 하는 일이었는데 의외로 재미있어 예상보다 긴 시간 동안 근무했었다.

수업은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는데 나는 주로 수학을 담당했었다.

정해진 시간에 화면을 켜고 아이들에게 그날 배울 것을 알려주면, 학생들은 화면 앞에서 각자 문제를 푸는 일종의 자기주도학습 훈련 수업이었다.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동안 한 명 한 명에게 안부를 묻고 숙제를 확인하고 모르는 문제를 함께 풀어주는 것이  시간 동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화면에 나오는 선생님, 즉 나와의 5분 남짓한 1:1 시간을 기다렸다.

저학년 아이들은 자신이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자랑하거나,

예쁜 머리띠와 태권도 도복 등을 입고 와서는 알아봐 주길 기대했고, 고학년 친구들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자신이 최대한 보이지 않는 각도를 찾아 문제를 풀곤 했다.

 

아이들은 화면 속 선생님에게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 안경을 쓰고 오거나 머리스타일이 바뀌면 꼭 쪽지를 보내며 알은체를 하곤 했다.

중간중간 마시는 커피를 발견하면 브랜드와 메뉴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아무 표정을 짓고 있지 않고 있으면 혹시 오늘 자신이 숙제를 하지 않아 화가 나신 거냐며 조심스럽게 묻던 아이도 있었다.


그 학생들은 나를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선생님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의 담임선생님과 아는 사이인지를 물어보았고 과학을 담당했을 땐 자신이 집에서 키우는 곤충의 수명을 묻기도 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이 모를 리 없다는 확신을 가진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재빨리 검색해 답을 알려주기도 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었던  친구들에게 나는 꽤나 자주 선생님 같은 멘트를 하곤 했다.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친구에겐 숙제를 내주는 이유가 이런 거라며 복습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바르지 못한 자세로 공부하는 친구들에겐 상에 딱 앉아서 필기하며 계산해야 정확도도 높아지고 집중도 잘된다고 말했다.


그 당시의 나 역시 토익학원의 숙제를 빼먹거나 피곤함을 이유로 영어 듣기를 누워서 하곤 했는데 양심도 없이 저런 이야기를 잘도 했었다.

복습을 해야 실력이 오른다는 말을 오전엔 토익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듣고, 오후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말하는 모순적인 일상이었다.


모두가 숙제를 해오면 다음 수업시간 끝날 때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을 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하면 아이들은 거짓말처럼 모두 숙제를 해오곤 했다.

나는 총 300명 정도의 아이들과 수업을 했는데 이중 순수하지 않은 아이들은 없었다.

내 칭찬 한마디에 얼굴이 빨개졌고 문제를 풀지 못했을 때의 시무룩한 표정은 숨기지 못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요즘 초등학생의 영악함 같은 것은 찾아볼  없었다.

애초에 그런 아이들은 자기 주도 학습을 위해 화면 앞에 앉아있지 않아서겠지만,

여하튼 모든 아이들은 그냥 아이일 뿐이었다.

다그치면 시무룩하다가도 칭찬 한마디에 환하게 웃어 보이는 아이들 덕분에 나도 참 많이 웃었다.

앞으로의 인생을 통틀어 초등학생함께  기회는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모든 아이들은 내가 그랬듯 어린 시절의 학원 선생님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나로 인해 곱셈과 나눗셈, 사다리꼴의 넓이 혹은 분수의 계산 같은 것 중   가지라도 알게 되었거나 기억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같다.

물론 이런 것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아니지만 적어도  친구들에게 스무  이전까지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


결말조차 너무 꼰대 같은가..?

나도 어쩔  없는 어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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