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산다는 글을 적은 적이 있다.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은 정리에 재능이 있으시다. 어쩌면 부지런함에 재능이 있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의 모든 생활용품은, 언제나 그 쓰임에 어울리는 장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 인양 느껴졌음에도, 그 구도를 한 계절 이상 유지하지는 않으셨다.
특별한 일 없이도 집안의 가구 배치를 계절에 한 번씩 바꾸곤 하셨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같은 집임에도 그 공간이 새롭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책장, 책상 혹은 침대 같은 큼직한 가구의 위치가 달라지면서 다니는 길, 문이 열리는 폭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이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타인에게 너희 집은 책상이나 침대 구조를 어떤 주기로 바꾸는 편이냐고 물어볼 일이 없기에, 모두가 이렇게 산다고 생각했었다.
스무 살이 한참 넘어, 자취를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그런 행동은 실로 대단히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고작 몇 평짜리 집이었음에도 변화를 주는 일은 번거로웠다.
살면서 크고 작은 불편함들이 있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냥 살았다.
매일이 바쁜 건 아니었지만, 그저 누워서 쉴 수 있는 시간에 가구를 재배치하는 일을 해보겠다는 결심은 쉽게 생기는 게 아니었다.
혼자 산지 4개월쯤 지났을 때, 부모님이 내 자취방에 방문하셨다.
그리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엄마 아빠는 집의 가구를 좀 옮겨두겠다고 하셨다.
워낙 그런 일이 익숙했기에 '엄마 아빠의 꿈을 맘껏 펼쳐보라'는 말과 함께 맡겨두었다.
'꿈은 무슨, 네가 안 하니까 하는 거지.'라는 대답을 듣긴 하지만 말이다.
그럴 때면 나는 마지막 댓글을 사수하는 사람마냥, '이렇게 살아도 하나도 안 불편하니까'를 덧붙이는 딸이다.
왜 항상 가까운 사람에겐 양보하거나, 져주지 못할까? 하여튼 나도 한참 멀었다고 새삼 반성한다.
여하튼, 부모님은 몇 시간 동안 사소하지만 중요한 모든 것들을 바꿔놓으셨다.
전자레인지랑 옷장이 붙어있어 옷에 냄새가 베이는일이 더 이상 없도록 전자레인지 위치를 옮겨놓으셨고, 빨래가 잘 마를 수 있도록 헹거의 위치도 바꿔주셨다.
부엌이랑 책상이 멀어 음식을 들고 이동하는 동선이 끝과 끝이었는데 이 부분도 개선이 되어 훨씬 편해졌다.
아주 짧은 거리이지만 가위를 가지러 가거나, 중간에 뭔가 묻어 키친타월을 가지러 가는 번거로움이 적어진 건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었다.
침대의 위치가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옮겨진 것 역시, 수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불편한 거 없어!"라고 한 사람 치고 편해진 점이 한가득이었어서 아주 머쓱했었던 기억이 난다.
부끄러우면 목소리가 커지는 치사한 인간인 나는, 고맙다는 말을 "엄마 아빠 나중에 이런 거 전문가 하면 딱이겠네 딱이겠어 적성이야!!!"라는 칭찬으로 대신했다.
엄마는 당시 다 할 줄 아는 거 무슨 전문가가 필요하냐고 말했었고, 자격증 취득이 취미셨던 아빠는 내 말을 듣고는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셨다고 들었다.
공부가 특기인 아빠는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자격증을 취득하시는 것이 정말 취미 셨기에, 이 모든 일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그다지 큰 임팩트 없이 사라지던 중이었다.
오늘 불현듯 이 모든 에피소드가 떠오른 이유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자식의 의뢰로 어떤 노부부의 집을 정리 전문가에게 맡긴 후기'를 봤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전문가 해보라고 했는데, 공간 컨설팅이라는 전문 분야가 이미 있었다.
개인의 공간을 그 사람에게 맞게끔 재창조해주는 일이었다.
이런 직업까지 생기다니, 사는 곳이 모두에게 더 큰 의미가 되어가는 시대구나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더 많은 시간 집에 머물기 때문일까, 내일보다는 오늘이라는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일까.
둘 중에 뭐든 결국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김승호 회장의 말처럼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먹고 자는 일을 반복하는 굴레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일들이 행해지는 집이라는 공간을 가꾸는 일은, 새삼스레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이겠다고 생각되었다.
나의 욕구와 필요를 따져, 버릴 것과 간직할 것을 나누고, 그렇게 생긴 공간을 재창출하는 것.
이건 삶에도 적용되는 공식이었다. “가끔은 멈춰서 나를 돌아보고, 비워보는 건 어때요?”
정리에는 인생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다.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에 나오는 정리 전문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멈춤. 정리. 시작.
이 세 단어들의 연결이 결국 삶을 살아볼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멈춰야 생각할 수 있고, 정리해야 비로소 보이기에 뭐든 다시 시작해볼 수 있어질 테니 말이다.
집은 나를 나타내는, 나를 알 수 있는 공간이에요. 현관 입구에 택배 박스가 많다면? 욕구가 많은 거죠.
한 번쯤 집을 돌아보면서 지금의 내가 어떤지 확인해보고 살펴보면 좋겠어요.
집을 돌아보면서 지금의 내가 어떤지 확인해 보는 일.
요즘의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했던 것이었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시간을 내서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돌아봐야겠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나도 멈춤이나 정리가 필요한 시기일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