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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Nov 13. 2022

딱 봐도 좋아 보이는 최소 노력의 법칙

책 [레버리지]를 읽고

우선 이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책이 조금 되바라진 경향이 있음을 알린다.

물론 이건 책의 문제이기보단, 책에서 표현한 '레버리지 당하는' 삶이 지금의 내 것이라 자꾸 뼈를 맞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기분은 나쁘다.

하지만 나는 기분 나쁘게 만드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렇게라도 혼쭐이 나야 그나마 몇 주 정도 정신을 차리기 때문이다.


레버리지는 과학에 기반을 둔 사고법이다.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더 짧은 시간을 투자해서 더 많은 시간을 얻는 것,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성과를 얻는 자본주의 속 숨겨진 공식이다. 한마디로 하면 ‘최소 노력의 법칙’이다.

누군가에게는 믿기 어려운 개념일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남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다면 말이다. 당신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오롯이 당신의 권리다. 삶은 ‘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어야 한다.


레버리지란 이렇다고 한다.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

말 만들어도 참 좋은 일인 것 같은데, 이것이 자본주의 속 숨은 공식이라고 하니 한번 알아봐야겠다.

삶은 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기에.


당신은 올바르게 시간을 투자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일을 위해서 오랜 시간을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이 그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다. 마치 사회가 억지로 좁은 공간에 가둬놓은 좀비들처럼.

만일 당신이 3~5년마다 승진을 하고, 인플레이션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인상되는 급여를 받기 위해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는 만족을 미루고 있다면, 연봉이 3,000만 원 인상되는 데 30년이 걸린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삶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산업 발전으로 인해 무용지물이 된 기술에 당신의 시간을 투자하거나, 경제적인 이익을 통제할 수 있는 직접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부자로 만들기 위해 당신의 시간을 투자하거나 정부 시스템에 당신의 미래를 의존한다면, 이 또한 삶을 기만하는 것이다.

시간과 돈이 비례한다는 보편적인 착각은 ‘수확 체감의 법칙 (자본과 노동 등 생산 요소가 한 단위 추가될 때 이로 인해 늘어나는 한계 생산량은 점차 줄어드는 것)’을 기준으로 봤을 때 전혀 근거가 없다. 사람들은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초과 근무를 한다. 초과 근무를 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착각이다. 시간은 되찾을 수 없다. 그러나 높아지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우리를 더욱 압박한다. 하지만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당신이 시간을 투자하는 동안 인플레이션은 슬그머니 뒤를 따라온다.

관습적인 사고는 관습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런 거. 이런 부분이 되바라지다 아주.

억지로 좁은 공간에 가둬놓은 좀비라는 표현에 욱했던 건 혹시 좀비처럼 살고 있다는 방증인 건가 싶어 화가 좀 가라앉았다.

관습적인 사고는 관습적인 결과를 낳는다.

변화하고 싶다면 사고를, 그리고 행동을 바꿔야 함을 아주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었다.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또 다른 기만적인 개념은 ‘일과 삶의 균형’이다. 행복과 자유로운 시간을 삶의 마지막으로 미루고, 인생의 1/3을 일하는 데 사용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균형’이 될 수 있는가. 당신이 연기한 삶은 끝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잠자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데 사용한다. 놀고, 탐험하고, 창조하고, 나누고, 배우고, 사랑하는 시간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데 사용한다. 그것은 균형이 아니라 스스로 부여한 노예의 삶이다. 당신은 자녀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당신은 스스로 그런 삶을 받아들이는가. 주말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어떻게 ‘균형’이 될 수 있는가. 오랜 시간 동안 싫어하는 일을 하고, 짧은 시간 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게 ‘균형’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어떻게 균형이 될 수 있냐는 물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름 워라밸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좋은 직장에 재직 중이라고 믿어왔는데, 결국 나도 잠자는 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이었다.

주말을 위해 남은 일주일을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기만당하는 중이었음을 덕분에 자각했다.

알고도 계속 당하는 건 나 스스로에 못 할 일이니, 이젠 정말 퇴사에 대한 생각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아야겠다.


성공을 이룬 사람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큰 비전이 그들을 이끌기 때문이다. 성공했다고 해서 항상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일이 단기적으로는 고통을 준다고 해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시계추의 움직임과 함께 흘러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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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리버만 박사는 행복을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한 전진’이라고 말했다. 그 전진은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전이 명확하다면 목표를 향해 항상 전진할 수 있다. 불행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신의 직업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한다. 직업은 만족의 근원인 동시에 불행의 근원이다.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과 삶의 균형 같은걸 말하지 말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생의 숙명 같은 일이, 많은 것을 양보한대도 꼭 이루고 싶은 비전이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있다.

그것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우리는 운전을 하기 전에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와 최단 경로를 확인하고, 사고가 났거나 교통체증이 심한 곳을 피해 안내받는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운전하면 시간과 연료를 낭비하게 되고 목적지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내비게이션이 없는 자동차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삶과 비즈니스를 운영한다.


방향 없이 산다는 말에 공감한다.

직장이 있으면 더더욱 그러기가 쉬운 것 같다.

일을 하며 월급을 받으면 꼭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의 제 역할을 온전히 다 해낸 느낌이라 뭘 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내게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님을 망각하게 된다.

어리석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떤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외부적인 압박을 받지 않고 하루 종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무엇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하는가?
당신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
당신의 어떤 점이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가?
삶에서 결과가 이미 나타난 부분과 나타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가?  

이 과정을 통해 당신은 행동을 지배하는 것들의 목록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연습을 학생 때 했다고 상상해보라. 삶을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 설계도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1년 혹은 6개월마다 이 방법으로 삶을 점검하고, 적용하고, 재조정했다고 상상해보라. 이 연습은 과거에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공책이나 스마트폰, 노트북에 항상 목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하물며 노트북도 주기적으로 점검해주면서 나는 왜 삶을 재정비하는 일에 이렇게 무심했나 모르겠다.

위 질문에 답해보니, 지금의 나는 내게 만족스러운 인생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졌다.

아직 많이 남은 이 책을 더 읽어, 책의 내용과 저자의 응원들을 모으고 모아 다시 적어보러 와야겠다.

그렇게 나는 내가 부디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직장을 포기할 엄두를 좀 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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