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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Nov 16. 2022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서

"선택권이 있다면 너는 다시 태어날 거야?"

누군가와 특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면 나는 위의 질문을 한다.

"응"이라는 대답을 망설임 없이 한 사람은 지금까지 딱 한 명에 불과했다.

대게 '얼굴도? 부모님도?' 같은 조건을 달거나, 혹은 고민 끝에 아니라고 답한다.

아니라는 대답을 눈앞에서 들으면 조금은 아프다.

나 역시 같은 대답을 서슴없이 하면서, 나의 지인으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중인 내 앞의 사람이 다시 살지 않겠다는 대답을 하는 건 서운한 모순적인 감정이 발동한다.

이유를 물으면 각자 복합적이고 다양한 대답을 들려줬다. 세상에 다시 오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나 가지각색인데, 다시 오라고 설득할 말은 단 한 가지도 분명하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세상을 왜 살아봐야 할까.

도대체 왜인지는 알고 살면 조금은 덜 억울할 수도, 어쩌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답을 내리면 한번 더, 아니 몇 번이고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선택권이 있다면 태어나겠냐는 질문에 내 대답 역시 그간 한결같았다.

모순적이게도 대체로 행복한 삶을 사는 중이었다.

때론 너무 행복해서 이만큼의 행복이 다 내 것이어도 되나 싶을 만큼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을 살기도 한다.

선천적으로 애쓰며 살아가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열정을 다해 무언가를, 누군가를 열망하거나 동경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부럽기까지 했을 만큼 어떤 일에도 필요 이상의 힘을 들이며 살지 않아서 말이다.

누가 나를 싫어해도 그런가 보다, 어떤 일이 말도 안 되게 흘러가도 이미 어쩔 수 없지 한다.

정신승리가 아주 잘되는 천성 덕분에 남들에 비해 조금 사는 게 유리한 편임을 살아갈수록 실감한다.

그럼에도 또 태어나겠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로 말고 이 '세상' 자체에 다시 오고 싶냐는 질문이라면 답은 결국 '아니'가 될 것 같다.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노력들, 극복해야 하는 슬픔들 그리고 태어났기에 경험하는 수만 가지 감정과 생로병사들을 또 마주하자니 버겁고 싫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이런 표현을 봤다.

산다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레일 출발선에 놓인 것 같다는.

출발 신호에 맞춰 달리다 보면 각자의 레일에 저마다의 허들이 복불복으로 나타나고, 모두들 자신 앞에 놓인 허들을 넘으며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적어둔 것도 아니었는데, 기억에 지금껏 남아있다.

고작 이 나이임에도 넘어온 허들은 다시 돌아봐도 여전히 높게 느껴지고, 넘어야 하는 앞으로의 허들은 해낼 수 있을까 두렵다.

이런 순간들에 의외로 선택권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때론 도움이 되긴 한다.

이 경기를 포기할 수 있지만 레일 위에 있기로 한 사람은 나라는 것.

그러니까, 언제든지 죽을 수 있지만 살기로 선택했기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이렇게 그대로의 사실을 이런 방향으로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이 모든 게 내 선택이 되고, 그러다 보면 세상에 내 맘 같지 않은 일 같은 건 없게 된다.

이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정신승리일지라도, 적어도 내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세상을 왜 살아봐야 하냐는 질문의 끝은 결국 죽는 순간 어떤 사람 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질문의 결론이 또 다른 질문일까를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 같은 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삶은 고해라는 말은 사실이다. 이런 삶이 주어진 것에 대해 왜를 고민하는 일은 무의미함을 넘어서 오히려 생을 힘들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차라리 어떤 사람으로 죽는 게 옳을까를 고민해보기로 결론지은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으로 죽고 싶다.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무엇으로든, 누구로든 다시 태어나 이 세상에 오고 싶다고 생각하며 가는 사람. 마지막 순간에 눈감으며 드는 마지막 생각이 '나 꼭 여기 다시 와야지. 어떤 존재로든 다시 와야지.' 라면 정말 성공한 삶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태어났기에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많이들 경험하고 살면 좋겠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지금을 저당 잡기 보단 누릴 수 있을 때 뭐든 해보는 것이.

그게 스스로를 굉장히 큰 방향으로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순간들을 모으고 모아 그렇게 조금은 태어나길 잘했다고, 이 세상을 한번 더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더 좋겠다.

다시 태어나고 싶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기 전 머뭇거림을 더해주기를, 어쩌면 '응'이라는 긍정의 대답을 해주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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