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다정해질 필요

by 이월생
세상은 우울증으로 넘친다.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다.
그건 그저 우울하기 때문은 아니다. 뇌가 보내는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인 신호다.
그걸 고백한다는 건, 병원을 제 발로 찾는다는 건, 자신을 다시 다듬어서 세상과 다시 연결지점을 찾겠다는 의욕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이다. 다정함이 당신의 친구들을 구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다정함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하찮은 인간이다.
하찮은 인간과 인간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을 살아내야한다.

_김도훈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중


우울증을 고백하는 것은, 스스로를 다시 다듬어서 세상과의 연결지점을 찾겠다는 의욕이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해당 행동을 하고 있는 이름 모를, 아니 존재조차 확신할 수 없는 이들임에도 괜히 기특하게 느껴졌다.

우울증은 단순히 심약한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우울증과 관련 있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괜찮게 지나왔던 어떤 일이 한순간 뇌의 이상 작용으로 그렇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매몰된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개인의 의지로 불가할 때, 그럴 때는 타인의 도움을 받자고 하는 건 너무 속 편한 이야기일까?

속편 할지 모르는 이야기를 계속해보자면, 그런 일을 마주하는 사람 곁에서 주변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게 있다면 '다정하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비난은 물론이고 조언조차도 듣고 싶지 않을 때엔 들리지 않는다.

극복사례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 모든 말은 그냥 '돌'같다고 생각한다.

돌 던지듯 던져놓고 그걸 위로라고 이름한다고 아프지 않을 리 없다.

그렇기에 그런 일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미 충분히 제 몫의 힘듦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내어줘야 하는 게 있다면 그건 다정함이라고 생각한다.

위 문장에서 하찮은 인간끼리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귀 기울이며 살아내자는 표현이 나온다.

정말 열심히 공감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100년 남짓밖에 머물지 못하는 그저 인간.

그렇기에 이왕이면 서로에게 다정하며 살다 가면 좋겠다.


다정하기가 쉽지 않음을 해마다 실감한다.

그건 마치 수혈 같은 일이라고 느껴진다.

내 몫의 회복력을, 여력을, 시간을 때론 돈을 타인을 위해 내어주어야 하는.

물론 대가 없이 말이다.


그렇기에 해가 지날수록 다정한 사람을 보게 되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 사람의 매일이라고 남들보다 편하고 수월하기만 할 리 없을 텐데, 어떤 힘듦을 극복했기에 타인에 저토록 다정해낼 수 있는 것인지 정말 대단하다.

때론 존경스럽다가도, 이렇게 다 내어주고 혼자 있는 동안 더 많이 힘들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된다.

그래서 다정함을 보이는 사람에겐 괜히 더 잘해주게 된다.

남녀노소 불문 누군가의 다정함을 목격하게 되면, 나는 굳이 가서 방금의 행동을 말하며 멋지다고 말하는 오지랖을 가진 인간이다.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다섯 명 남짓 되는데, 내가 슬쩍 가서 엄지를 올리며 그들을 치켜세울 때 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다들 해~' 였었던 기억이 난다.

누구였어도 그 상황에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반응마저도 그들 같다.

다정함과 겸손함은 묶음인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더 많은 이들이 서로서로 다정하게 살면 좋겠다.

타인에게까지 그렇기 힘들다면 적어도 본인 주변인들에게만큼은 말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급 추워진 날씨에도, 사람끼리 다정함으로 훈훈하게 잘 지나 보내며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