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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Dec 16. 2022

주어지지 않은 삶을 바라지 않는 연습

오늘도 [아무튼 노래]라는 책을 읽고 글을 적는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내 글을 낭독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약간 오금이 저린다. 이런 작가는 나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작가 금정연 역시 “지옥은 내가 쓴 글을 끊임없이 읽어대는 코러스들로 가득한 곳”이라는 문장을 쓴 바 있다. 친구들은 종종 나를 괴롭히기 위해 면전에다 대고 일간 이슬아 원고를 낭독한다. 그럼 나는 귀를 막고 외친다. “아~~~ 안 들려! 안 들려!” 이 경험이 당혹스러운 이유는 소리가 되어 돌아올 거라고 예상하지 않은 채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소리가 될 줄 알았다면 대부분의 문장을 지웠을 게 분명하다.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내 글이 소리가 되어 돌아오는 상황을 말이다.

그 상황을 그려보니, 문득 끔찍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너무 부끄럽고 민망스럽고 무엇보다, 짜증이 좀 날 것 같다.


적은 지 너무 오래된 어떤 글은 정말 내가 적었나? 싶다.

나만이 들어가 적을 수 있는 플랫폼에 적어둔 글이기에, 이건 뭐 피할 수도 없이 나의 글이겠지만 몇 번을 읽어봐도 꼭 남의 것 같다.

글에 담긴 생각에도 놀라고, 가치관에도 놀라고,

그런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놀라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금 같은 속도로 무언가를 적어 세상에 전체 공개하는 일이, 굉장히 경솔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런 이유로 이 100일 글쓰기가 끝나면, 언젠가 발행해둔 글을 전부 비공개로 돌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이걸 모르겠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진짜 모르겠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보여지는 모든 것에 신중하고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모든 사람은 죽을 테고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올 텐데 그냥 살아!"라고 말하는 가수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이 싫으면 매일 조금이라도 더 신중한 글을 적으면 될 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꼭 글을 적을 시간이 없는 날에는 12시가 너무 빨리 와서 글을 거의 출근하듯 후다닥 발행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노래는 우리 마음을 뒤죽박죽 휘젓는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게 해서다.
노래를 듣고 부르다가 문득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어떤 점에선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지. 어쨌거나 시간은 계속 흐른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로 미래의 내가 시간 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분을 노래를 들을 때 느낀 적이 있었는데, 글로 적힌걸 보니 괜히 더 뭉클했다.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그대로인 것을 듣거나 볼 때 더 큰 폭으로 실감하게 된다.

어쨌거나 시간이 계속 흐른다는 이 변함없는 사실이 제일 슬프고 무겁게 다가온다.

유한해서 소중하다는 건 인간의 자기 위로 같다.

유한하지 않은 것도 소중히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인간에게 유한함은 그저 아픔이 아닐까.


"사실 나는 살아가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우리 사이를 드나들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누워 현희진이 겪어온 험한 일들을 생각했다. 겪지 않기를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적어도 돈을 가진 어른이 될 때까지는 못 벗어나는 일들이었다. 나는 맞은 적도 없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적도 없고 가족을 버린 적도 없다.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떠난 적도 없고 아주 혼자였던 적도 없고 모든 걸 멈추는 게 나을 만큼 괴로웠던 적도 없다. 그래서 사는 게 좋았나.
삶에게 많은 걸 바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가고 좋은 것을 기대하고 크게 웃고 크게 울고 크게 다짐하고 다시 시작하는 건 그래서인가. 첫 번째 생을 사는 동물처럼. 덜 알아서 덜 고단한 아이처럼. 누구나 그런 새살 같은 마음으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스물다섯 살인데 이백오십 년은 산 것처럼 지친 사람도 있다. 현희진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가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구나…."

이 문장에서 가장 좋았던 건 할 말을 찾지 못했을 때, 그저 상대의 말을 따라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부분이었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 순간에 나도 저래야겠다고, 긴 문장이더라도 그 끝에 그랬구나를 덧붙인 말을 건네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적어도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한 순간에는 가장 최선임을 오늘에야 안 것 같다.

진즉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열심히 써먹어야지.



우리 중 가진 물건이 가장 적고 우리 중 가장 비굴하지 않은 한 사람.
주어지지 않은 삶을 바라지 않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다고, 연습이란 말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현희진은 예전에 나한테 말했었는데. 이제 나는 그가 다른 연습에 더 익숙해지기를 소망했다.
바라는 연습. 많이 바라면서 계속 사는 연습. 그리고 나에겐 다른 연습이 남아 있었다. 더 친구가 되는 연습. 갈수록 더욱더 친구가 되는 연습. 사실은 친구가 되는 일만이 내게 남은 전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짐을 챙겨 해변을 떠났다. 다들 다시 삶을 고요히 견디러 갔다. 뒤로 걸으니 바다가 멀어졌다.

책 속에는 이슬아 작가의 많은 지인들이 등장하지만, 그중 현희진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주어지지 않은 삶을 바라지 않는 연습.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의 생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해보기도 죄스러운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잔인한 연습이 있다면 그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밤색 수영복을 기꺼이 선물할 지인이, 가족을 대신해 드넓은 바다를 보여줄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괜스레 안심이 된다.

누구도 갑자기 죽고 싶어 하거나,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기적 이게도, 나 역시 그녀가 이제는 다른 연습에 익숙해지라는 강요 같은 바람을 마음속으로 건네고 있다.

'주어지지 않은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연습' 혹은 '주어지지 않았던 삶을 선택해 나가는 연습'등을 말이다.

처음 만나보는 바다 앞에서 그토록이나 용감했던 사람이라면 분명. 할 수 있어 보인다는 닿지 않을 응원도 함께 보내본다.



다 읽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노래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영혼을 들켜버리고 만다는 문장이 나온다.

작가는 노래도, 노래를 알려준 어른도, 같이 부른 사람들도 전부 다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주제로 담은 이 뒤죽박죽 할 이야기들이 하나도 안 뒤죽박죽하게 쓰여 있었다.

이 책을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아주 얄미운 사람들을 목격한 그런 날에 읽기를 추천한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사람이 조금 더 좋아지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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