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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Dec 25. 2022

모이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가족

가족끼리 오랜만에 모이면 우리는 새벽까지 잠들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18시부터 새벽 2시까지 거의 8시간을 내내 논다.

tvn의 슬로건처럼 즐거움엔 끝이 없다! 뒤에 우리 가족 이니셜을 말하는 게 우리끼리의 유행일 정도.

어떤 날은 대화만 하고, 또 어떤 날은 게임을 한다.

물론 무엇을 하든 먹는 것으로 시작되어 먹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최근의 경우 게임이 더 자주 선택되었다.

지지난해까지는 엄마아빠의 두뇌 활동을 위해 루미큐브를 자주해왔는데, 이모가 놀러 와 놓고 간 화투패가 생긴 이후 우리는 고스톱을 친다.

뜻밖의 재미와 두뇌싸움이 루미큐브 못지않게 치열하고, 실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운의 작용도 무시할 수 없기에, 꽤나 공정하다.

사실 루미큐브의 경우 주로 젊은 피인 나나, 혈육이 이기게 되기 때문에 조금은 불공정하다. 그렇다고 엄마아빠가 못하시는 편은 절대 아니다.

다만 미친 승부욕을 가진 ESTP 두 명이 과하게 잘하는 것이다.

참고로 여전히 혈육의 mbti가 나와 같음을 믿을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하니 일단 그렇게 알고 있기로 했다.

지인들은 내게 P보다는 J인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참에 조금 더 계획적인 ESTJ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mbti 과몰입러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고스톱을 종종 치는데 나는 이 게임이 매번 너무 신기하다.

카드의 유래가 중국에서 유럽에서 일본에서 우리나라다 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카드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걸로 하는 고스톱이라는 게임 방식이 유난하게 재밌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재가 만들었을게 분명하다고 매번 하면서 생각한다.

어떻게 고작 이 카드들로 이토록 분명하고도 정교한 룰을 만들어 낸 건지.


고스톱은 규칙이 있지만 개방적이라, 지역마다 혹은 사람마다 조금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언제나 합의 가능하기에 치는 사람들에 맞는 유동성을 자랑한다.

진행이 신속하며 한 판이 일찍 끝나는 속도감도 장점이다.

영원한 패자도 승자도 없이, 게임하는 판수가 늘어나고 시간이 길어지면 다들 비슷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뭐 유독 뭐가 잘 안 되는 날도 있지만 게임하는 모든 날들을 더해보면 결국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확연한 실력차 같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실력이 중요한 바둑이나 오목 등의 게임과는 다르게 운을 무시할 수 없음이 이 게임의 또 다른 매력이다.


내가 이 게임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시작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윷놀이는 유치해서 못하겠다는 나의 미운 7살 시절, 친할머니께서 그럼 이건 어떠냐며 화투를 보여주셨다.

어른들이 종종 하는 것을 보았기에 마치 내겐 화장이나 커피 같은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것 말이다.

그런데 나도 카드를 만질 수 있다니! 가끔 엄마가 손으로 톡톡 입술을 발라주는 것만큼이나 으쓱한 사건이었다.

1부터 12까지.

처음 배운 건 그림 맞추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기억력 발달에 굉장히 효과적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두 살 위 혈육에 밀리지 않으려, 나는 최선을 다해 외웠고 겨뤘다.

그러나 7살과 9살의 차이는 어릴수록 더더욱 극명해서 나는 자주 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게 할머니는 복습을 많이 시켜주셨고, 덕분에 나는 지금도 화투패의 숫자와 이름이 자다가도 튀어나온다.

특히 초 / 흑싸리 / 풍 / 비 등의 이름으로도 많이 부르는데, 그 탓에 언젠가 친구에게 타짜 아니냐는 의심 어린 질문을 받기도 했다.


아무튼 갑자기 크리스마스에 고스톱 이야기를 너무 오래 했는데,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그래서 어제저녁 우리 가족은 퇴근 후 다 같이 모였고, 무려 새벽 2시까지 대화도 하고 게임도 하고 밥도 먹고 케이크도 먹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모이면 늘 외치는 구호가 있는데, [우리 가족은 매일 점점 나아지고 있다]가 그것이다.

자주 뱉으면 진실이 된다는 말처럼, 진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가난이라는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며 생긴 공동체의식이니, 보증의 추억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잠시 헷갈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본다.

피할 수 있는 경험이면 안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린 이미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놓였었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모이고, 대화하며 함께 한다.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이렇다는 지금의 결론에 집중하고 싶다.


Sullys stick together.
It was our greatest weakness and our great strength.



한번 더 보고 와서 아직 나는 아바타 2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좀 뜬금없지만 다시 아바타 2 대사를 가져와보았다.

지금 우리 상황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이 전부 함께여서 가난했던 시절 더 힘들었지만, 전부 함께여서 그 시간을 잘 지나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에.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속한 '우리'가 지금 이 가족인 것이 좋다.

이건 나의 가장 큰 약점이자 강점이라는 말을 지금의 가족 안에 속해있기에 완전하게 공감할 수 있지 싶다.


우리는 이토록 친한 가족이지만, 개인적인 부분을 굉장히 중시한다.

이건 고집 센 자식 두 명이 어차피 지들 좋을 대로 기어코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 부모님이 양보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아침 해장 후 각자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새벽 2시까지 놀다가 9시에 해장을 하고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뿔뿔이 제갈길을 가는 이 가족이 나는 웃기면서도 너무 좋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나갈 수 있는 크리스마스라 사람이 많이 모이겠지만,

부디 아무 일도 없이 모두가 행복하기만 한 크리스마스이기를 바라며,

오늘을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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