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송크란 축제에 참가하지 않을 자유

#동남아 배낭여행_8

by 이월생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자유는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나선 지 5분 만에 나는 골목 한구석에서 콩콩거리며 귀에 들어간 물을 빼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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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크란이 언제인지 모르고 동남아시아 여행을 계획했다면 좀 많이 무지해 보이진 않을까 싶어 고민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몰랐다.

4월의 어느 날 송크란 축제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저 불상에 물을 끼얹는 뭐 그런 정적인 축제인 줄 알았다.

물총싸움이 존재한다는 건 알았지만, 우리나라 워터밤처럼 특정 인원은 그렇게 노는구나 생각했다.

때문에 여행 스케줄을 정할 때 송크란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가고 싶은 도시들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다니기를 정하니, 송크란 기간 내내 치앙마이에서 머무는 일정이 짜여졌다.


송크란 축제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큰 규모라는 것을 태국 우돈타니에 도착해서야 눈치챘다.

우돈타니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비행기 직항, 버스표 등이 매진이었다. 선택권 없이 13시간 경유 비행기표를 15만 원가량 주고 구매해야 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속이 쓰린 일이다.

치앙마이에서 방콕에 가는 교통편도 변경해야 했다.

비행기값은 어마어마해져 있었고, 기차는 4/18까지 한 좌석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토록 학을 떼던 슬리핑버스를 또 선택해야 했을 만큼 노답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치앙마이에 도착했고, 투어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치앙마이의 택시투어 기사님은 아래와 같은 답변을 보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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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옷이 전부 축축해질 때까지 물을 맞을 거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해 오시니, 저 투어를 원래 계획했던 15일에 강행할 수 없었고 결국 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알려주셨던 얼굴도 뵙지 못한 톰 기사님께 무척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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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도착해서, 타패게이트를 구경하려고 길을 나섰다.

나가는 길에 호텔 직원이 물조심하라기에, '음? 벌써 안 할 건데?' 생각했다.

타패게이트 둘러보고, 오는 길에 축제에 참가하거나 다시 방에 들어왔다 나가서 송크란을 구경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주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참여는 내 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가게들 앞에는 해당 가게의 가족들이 다 같이 나와있었다.

적어도 3대는 함께 있는 듯 보였다.

서로에게는 이미 물을 주고받았는지 흠뻑 젖어있었고, 물과 양동이 같은 걸 들고 길을 향해 서있었다.

'설마.. 나? 나 기다리는 거 아니지~ 나 물총도 양동이도 아무것도 없는데...' 생각하던 찰나 뒷목에서 시원한 물이 느껴졌다.

그랬다. 나는 방금 양동이에 든 물을 맞은 것이다.

뿌린 물을 맞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들이부어졌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물 맞은 상태로 걷다 보니 더더욱 부담 없이 사람들은 내게 물을 뿌려댔다.

거리에 나선 지 5분 만에 나는 사람 없는 골목으로 도망치듯 들어와, 귀에 들어간 물을 빼내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방수가방을 들고 나온 건 내가 치앙마이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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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거의 모든 가게들이 셔터까지 내리고 물 뿌리기에 진심이었다.

아이들은 저 멀리서부터 사람이 오면 눈과 입에 웃음이 번진다.

처음 내 옷이 건조했을 때는 그래도 조심스러워하더니, 머리까지 흠뻑 젖은 상태로 다니니까 양동이로, 호스로 물을 뿌려왔다.

"ㅎㅎ고맙다 애들아~~"

송크란 기간에는 물 맞고 화내기가 금지라기에 물이 차가웠지만 웃었다.

이렇게 되어버린 게 어이가 없기도 하고, 나는 물총도 뭐도 공격(?)할 게 없으니 그저 웃으며 다녔는데, 그래서 더 물을 많이 맞았던 걸까 싶다.


내가 구경을 간다던 타패게이트 쪽은 상황은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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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없는 거리는 아니지만, 차로 어딜 갈 수 있어 보이지도 않았던 거리였다.

저 너머에 강이 흐르는데, 그곳에서 물을 길어와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부어줬다.

분명 걷고 있는데 순간순간 물속 같았다.

어푸어푸거리고 나서야 앞이 보이곤 했다. 눈과 귀, 입까지 물이 들어갔다.

그때쯤 나는 부디 내게 깨끗한 물을 뿌려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물총을 사서 나도 본격적으로 대항(?)할까 고민했지만, 거리에서 파는 물총은 무려 250바트.

거의 만원이었다.

아무리 물을 많이 맞았어도 물총을 만원 주고 살만큼 정신이 없지는 않았다.

할 수 없이 물을 맞고 맞고 또 맞으며 계획했던 관광을 어렵사리 끝냈다.

사진을 남길 수는 없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다고 봐주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방수팩에 얌전히 넣어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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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에 옷이 축축해져 있는 나도 받아줄 것 같은 식당을 발견했다.

쫄딱 젖은 상태의 내가 쭈뼛거리며 가게로 가니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저 지금.. 앉아도 되나요..?" 했더니 당연하다며 "송크란에는 뭐든 오케이야~"라고 답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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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와 보니 다들 축축한 상태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의자에도 물기가 있어, 축축한 상태로도 부담 없이 앉을 수 있었다.

건식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메뉴를 시키니 헛웃음이 조금씩 나왔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치앙마이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되어버린 게 좀 어이가 없었다.


송크란 축제에 참가할 시간도, 아니 참가여부조차도 내가 정하는 게 아니었다.

걸으면 물을 맞게 되는 것.

이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간이다.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참가에 대한 동의인 느낌이었다.

행여라도 '나를 안 끼워주면 어쩌나', '이 축제에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같은 걱정은 할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나 복(=물)을 나눠주고 싶어 하는 태국인들이 3미터마다 두 명씩은 있으니 말이다.


이날을 시작으로 다음날도 그다음 날에도 외출만 했다 하면 옷이 전부 축축해지고서야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번화한 곳을 아무리 열심히 피해 다녀도 골목길에서 물 뿌리는 가족들까지 피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부터 아이들이 저토록 싱글거리며 나를 기다리는데, 까짓것 맞아주지 뭐.. 싶어지기도 한다.

깨끗하게 씻은 후 커피 한잔 사러 나가서 물을 맞아버리면 마냥 웃기지만은 않았지만, 지금 와 떠올려보면 그것도 다 추억이지 싶다.

그래도 다행인 건 밤에는 물을 뿌리지 않는다는 것과, 이 기간에도 비싸지만 택시가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구매한 날에는 택시를 타고 호텔 앞까지 오는 방법으로 기념품들을 건조하게 지켜냈다.


물을 뚝뚝 흘리며 호텔에 가도, 카페나 식당에 가도 모든 태국인들은 활짝 웃으며 "송크란 어때? 재밌어?"를 묻는다.

'두유노 BTS'같은 느낌인 걸까?

태국인 모두가 이런 축제를 좋아할 수는 없으니 몇 명이 싫어하는 내색을 해도 그러려니 했을 텐데, 거짓말처럼 그 누구도 그런 표정은 아니었다.

본인 나라의 축제를 즐기는 외국인들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인 모습에 왜 태국이 관광대국인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 역시 모든 순간 따뜻했고 즐거웠다.


언젠가 또 송크란에 참가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아니 송크란 기간에 맞춰 또 치앙마이에 굳이 가야겠다.

그때는 아주 튼튼하고 커다란 물총을 사들고 가서 골목에서 물 뿌리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그렇게 복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오겠다는 착한 마음을 먹어보며, 치앙마이 송크란 후기를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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