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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May 22. 2023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

오늘의 책은 [클루지]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고 한다.

영리한을 뜻하는 독일어 '클루그'가 기원이라는 게 다수의 추측이라고 한다.

책에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온다.

진화의 과정에서 가장 최선의 것들을 선택해 온 게 아니라 차선들을 선택해 지금의 우리에 이르렀다는 맥락에 공감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선택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주먹구구식이기도 하다는 것에.


충격적인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3~5세의 아이들에게 당근, 우유, 사과주스 같은 음식에 대해 평점을 매기도록 했는데, 이들은 똑같은 음식이 맥도널드 포장에 싸여 있었을 때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책에는 당연히 표지가 있고 당근은 스티로폼 포장에 쌓여 있다. 우리는 모두 속아 넘어가도록 타고 난 셈이다.

이렇듯 우리는 속아 넘어가길 타고났다는 것.

초점 맞추기 착각도 비슷한 내용을 다룬다.

어디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받았는지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하게 된다는 것.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신념이 실제로 얼마나 물렀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내면적인 느낌조차 우리의 초점이 마침 그때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책에서 내린 결론은 인간은 거의 무엇이든 믿을 준비가 되어있는 종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 무슨 이유에서든 진실이라고 믿기로 결정하면, 그것을 믿기 위한 새로운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내 컴퓨터는 이메일을 내려받는 동안에 ‘딴 데 있는’ 일이 결코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은 늘 여기저기 헤매고 다닌다. 교수회의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도 어쩌다 짬을 내어 재미난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주의결핍 장애가 신문에 자주 대서특필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집중의 어려움을 주기적으로 겪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완벽한 통제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너무 공감했다. 믿을 수 없게도 이 책이 너무 재미있지만 읽는 동안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책을 보는 것에 앞서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고, 그걸 하러 가게 되곤 했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방해가 되는데, 때때로 오는 휴대폰 알림이나 전화는 말할 것도 없이 내 주의력을 부서트린다.


책은 마음이 클루지인 이유를 수많은 사례들로 설명해 준 다음, 해야 하는 행동을 알려준다.

누군가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실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대답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덜 편향된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결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명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인지적 노력을 기울이며, 따라서 관련 정보들을 더 자세히 분석하고, 더 세련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중 이 방법은 꽤나 효과적일 것 같아 적어두었다.

내가 브런치에 매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교육을 받지 않으면 우리 소화기관의 작동 방식에 대해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어떻게 적어두어야 하는지, 증거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인간이 자연적으로 잘하는 것은 (또 잘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전혀 배운 바가 없다. 이런 것들을 자기 힘으로 깨닫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일상적 논증에 대해, 오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 또는 통계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고등학교에서 수업한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구글의 시대에 아이들에게 암기를 요구하는 식의 교육은 유용성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공감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사회에 나올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우리 뇌와 마음의 내적 작용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배워야 하는 것이 맞다.

이걸 12년간 배우게 되면 지금과 같은 자살률이 기록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가장 인상적인 연구들 가운데 하나는 ‘어린이를 위한 철학’이라는 커리큘럼에 대한 최근 연구다.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이들에게 철학에 관해 생각하고 토론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의 교재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아이들이 철학적인 문제와 씨름할 수 있도록 고안된 아동용 이야기들이다. 그 중심 교재인 『해리 스토틀마이어의 발견 Harry Stottlemeier’s Discovery』(이것은 해리 포터와 아무 상관이 없다.)은 주인공 해리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에 대한 수필을 쓰라는 과제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소년인 해리는 생각에 대해 수필을 쓰기로 작정한다. “나한테 세상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생각하는 것이지. 물론 나는 전기, 자기, 인력과 같이 다른 많은 것들도 매우 중요하고 놀랍다는 것을 알아.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이해하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잖아? 그러니까 생각이야말로 매우 특별한 것일 거야.”
이런 종류의 커리큘럼으로 16개월 동안 매주 딱 한 시간씩 수업을 받은 10세에서 12세 사이의 아이들은 언어 지능, 비언어 지능, 자신감, 독립심에서 뜻깊은 향상을 보였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도 위와 같은 철학 수업이 보편화되었으면, 아니 그것이 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 책을 다 읽고 내린 결론은 하나.

나는 정상이라는 것이었다.

도무지 집중을 못해내는 나, 할 일이 산더미인데 미루기를 반복하는 나, 쓸모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나와, 살이 찔 것을 알지만 음식을 먹는 나는 전부 진화론적으로 잘 진화한 인간이라는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책이다.

정확히는 진화의 관성을 수행한 인간이라는 것.

마음이 편해진 동시에 서둘러 2023년 시기에 맞게 조금 더 먼 미래를 생각하는, 진화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만 통제하면, 그러니까 나만 나를 어쩌는 게 가능해지면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은 자명했다.

왜냐하면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은 진화론적으로 진화의 관성을 따른 상태 그대로 살게 되니까 말이다.

이래서 역행자라는 책도 유행을 한 것이겠지.


읽는 순간만 이런 것들을 느끼지 말고, 내일부터 다른 건 몰라도 음식에 관해서 만큼은 나를 통제해 보도록 노력해보려고 하다.

책에 따르면 목표를 구체적인 조건 계획의 형태로 바꿀 경우에 성공항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고 했다.

'3킬로를 감량하겠다' 보다 '밀가루를 보면 그것을 멀리하겠다'같은 규칙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책은 인간 마음의 진화적 근원을 밝히려는 노력을 가지고 쓰였지만, 이 진화의 관성이라는 개념은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개념이라고 한다.

진화이론의 핵심개념인 '자연선택'과 여러 면에서 반대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쓰인 이론에 너무 공감하며 읽었지만, 이건 책을 읽는 개개인의 판단이라고 생각되니 한번 읽어볼 것을 추천하며 독후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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