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생 May 23. 2023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하는 공부

책의 제목은 [내일을 바꾸는 인생 공부]

저자는 1년의 1000여 권의 책을 읽는 다독가로, 이 책이 고전을 읽기 전 준비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아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첫 번째는 고전 자체의 경쟁력. 

길게는 2500년, 짧게는 100년 동안 생명력을 이어온 공인된 스테디셀러이기에 가치 있는 지혜가 담겨있다는 점.

두 번째는 과학기술은 발전했을지 몰라도 인간의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수세기 전에 했던 고민과 그에 대한 해결책들이 현 세기의 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다고 한다.

세 번째는 고전의 대부분 당대와 미래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통찰력을 지녔다는 점.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은 많지만, 지혜는 고전에서만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고, 그렇기에 과거의 지혜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에는 공감하며 책을 읽었다.


책 [운명을 만드는 절제의 성공학]의 저자가 했다는 아래의 말이 인상 깊다.

자신이 성공할 것인가를 알고 싶다면 먼저 식사를 절제하고, 이를 매일 엄격히 실행해 보면 됩니다. 만약 이것이 쉽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평생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식사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식사를 절제하는 것은 마음에 안정을 주고 몸을 보살피는 근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출세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식사를 절제하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람이 세상엔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이 적은 것입니다.

살면서 매일매일 내가 절제할 수 있는 인간인지를 알아보는 길은 식사할 때뿐인 것 같다.

이런 지점에서 나는 참 애매하다. 

독하다는 말을 들었을 만큼의 음식 절제로 보통의 무게에서 살을 그만 빼라는 말까지 들어보았는데, 이내 또다시 원하는 만큼 먹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절제력이 무르익지는 못할망정, 그때도 해냈던 것을 지금은 해내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실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다행히 요즘은 책을 읽고 다시 그렇게 살아보리라는 마음을 먹고 조금 덜 먹어내는 것은 같은데, 평생 이렇게 절제하며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야겠다고 위 글을 읽으며 한번 더 다짐해 본다.


공자는 ‘인’을, 맹자는 ‘의’를 강조했죠. ‘인’이 개인적인 덕목이라면 ‘의’는 바로 사회적인 가치입니다.
맹자는 ‘의’가 아닌 이익을 추구할 때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예견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이익을 추구하면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는 세상이 올 수 있음을 맹자는 경계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이익을 추구합니다. 국가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협의체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의’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익을 추구하니, 국가만큼의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을 기억해두고 싶어 적어두었다.


독서력과 독해력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개념이죠. 독서력은 책을 읽는 능력이고, 독해력은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독서력이 좋으면 대개 독해력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독서력은 책을 많이 읽으면 자동으로 늘어나는 능력이지만 독해력은 그냥 많이 읽기보다 여러 분야의 책, 그중에서 새로운 지식이 많이 포함된 과학 기술 책을 반드시 포함해서 균형 잡힌 독서를 해야 키울 수 있습니다. 

일부 유튜버들은 책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데, 결코 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겁니다. 책이란 읽으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체화된 지식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유일한 지식 매개체입니다.
지식과 지혜를 동시에 갖도록 돕는 매체가 책이라는 사실은 공자가 활약했던 춘추전국시대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책을 고르는 기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끌리는 책을 읽는 편인데, 이런 끌림은 늘 비슷한 책들에만 반응한다.

알고 싶은 것 말고 알아야 하는 것도 알고 읽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머리를 기준치 이상으로 돌려야 하는 것을 모르지 않아서 자꾸만 피하고 싶어 진다.

내일부터는 원래의 나라면 고르지 않을 법한 책도 선택해야겠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처럼 ‘사랑’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나약한 마음 때문에 신을 믿는 것이 종교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종교는 신이 아닌 사랑이 만들어낸 관념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미워하기 시작해 증오의 감정을 키우고 자신과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치유의 욕망이 종교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사랑이 만들어 낸 관념이라는 개념이 신기했다.

지금의 종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자아를 찾는 과정은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일까요? 헤세는 다음과 같은 멋진 말로 답합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온 힘을 다해 애쓰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돌이켜 생각해 보고 이렇게 한번 물어봐요. 그 길이 정말로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단지 어렵기만 했던가? 그러면서도 아름답지 않았던가?”
세상에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를 깨부수고 새로운 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쉬울 리가 없겠지요. 그러나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아름답기에 우리는 고통을 무릅쓰고 자아실현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아름답다고 하니, 충분히 나아가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자아실현은 자아비판이며 자기 교정이라고 하니 어쨌든 쉬울리는 없다.

내게 해로울게 분명하지만, 지금 당장 재밌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놓지 못하고 사는 중이니 말이다.

자아실현은 좋은 습관을 몸에 형성해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하니, 부디 습관이 형성되기까지 제발 원래의 내가, 아니 이전의 내 자아가 너무 강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고전을 읽기에 앞서 준비운동으로 더할 나위 없는 책이었다.

책의 마지막이 공존을 말하고 있다는 점도 좋았다.

고전을 읽어도 여전히 삶은 외롭고 힘들 테지만, 그 안에서 얼마만큼의 선택권을 가지고 자유의지로 살아갈지는 개인이 결정할 수 있다는 말도.


에필로그 속 저자의 말처럼, 고전이 모든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며, 독후감을 마무리한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