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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개업했고, 올해 폐업했습니다.

by 이월생

제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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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장사는 재미있거나,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며 대차게 오픈한 게 고작 작년 6월.

특수매장이라, 한 달이 넘도록 어렵게 입찰을 하고, 낙찰을 받고, 심지어 작년 겨울 무렵엔 동업까지 했던,

이 모든 과정이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은 경험이라는 게 적으면서도 놀랍다.


처음 하는 일을 하면,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간다는데 그 말이 진실임을 체감하는 1년 4개월이었다.


내가 퇴사를 하고 1달도 되지 않아 시작한 일은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한국방송작가 교육원에 다닌 것이고, 또 하나는 자영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첫 번째 일은 KBS드라마의 보조작가로 1년간 근무한 경험을 갖게 해 주었고,

두 번째 일은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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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을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올해 8월부터 적어도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고민했다.

내 생각을 적어보기도 했고, 모든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도 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이 일을 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매장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자영업자라는 롤을 이행하는 내가, 도저히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식점 자영업은 해본일 중 가장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오픈 초반, 오전 6시에 매장에 나가 11시까지, 17시간을 그곳에 머물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반복하게 되는 이 시스템 자체가, 나를 꽤나 지치게 만들었다.


음식점 자영업자가 해야 할 일은 사소하고도 많아서, 태가 나지 않는 일을 매일매일 꾸준하게 반복해야 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내가 몰랐던 건, 이걸 하는 내가 이렇게까지 불행해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적성이 아닌 일 안에서, 내가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여실히 깨달은 1년이었다.


나는 가게를 차려놓고 계속 다른 돌파구를 고민했다.

또 다른 사업자를 내고, 온라인으로 하는 일을 세 가지나 시작했다.

당연히 매장은 뒷전이었다.

그런 일들을 할 때, 더 행복했고, 당연하게도 결과 역시 더 좋았다.


매달 500만 원의 월세가 나가는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놓고,

돈을 다른 곳에서 벌어 채워 넣는 스스로를 보고, 매장을 접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하면서 불행한 일을 남에게 줄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이에겐 자영업이 재미고, 적성일 수도 있겠으나,

혹여나 내 가게를 양도받은 사람이 이곳에서 나와 비슷한 불행을 느낀다면, 그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이런 만약의 가능성조차 피하고 싶을 만큼, 개인적으로 매장에서 보낸 시간들이 힘겨웠다.


장사가 잘되고 안되고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사실 장사 자체는, 매장 주변의 회사들이 월단위로 결제를 하며 먹었고, 그런 문의들이 늘어갔기 때문에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이대로 쭉 더 해나간다면, 잘 될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이 일을 잘 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일로 바쁘고 싶었지, 이 매장에 지금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자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만큼 지쳐있었다.


오픈한 지 고작 1년 만에, 이런 마음이 든 스스로가 너무 실망스러웠고,

또 이런 식의 포기는 나답지 않다는 생각에, 폐업에 대한 고민은 더더욱 길었다.


대체로 선택한 모든 일이 정답이었거나,

오답이었더라도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일에 자신이 있었던 성향이라,

무력하게 패배해 버린 듯한 이번 사건을 감당하기가 벅찼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패배감이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여름 끝에는 스트레스에 탈모까지 왔을 정도였다.

내가 했던 그 어떤 번복보다도 훨씬 더 큰 손실을 야기하게 될 번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금전적 손해를 감당하기로 했다.

다소 무책임할 수 있으나, 날 매장에 더는 놔둘 수가 없겠다는 게 이유였다.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 매장에 대한 무책임으로 발현되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신중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질문엔 언제나 답이 같다.

내가 시작할 때 얼마나 신중했었는지는, 시작하는 때에 매일 적어둔 일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더 신중했다고 해서,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리 없었을 것이다.

더 신중했다고 해서, 지금의 결말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번일로 '지금 알았던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가정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알았다.

해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정답이 내게는 오답일 수 있는 건, 부딪혀봐야만 알 수 있다.


나는 내가 정해진 반복을 이토록이나 못 견뎌하는 인간임을 몰랐다.

한 곳에 머물며 일하는 일이, 나를 상하게 하는 요소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당연했다.

해본 적 없었으니까.


그래서 폐업했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금전적 손실에도 내가 얻었다고 생각하는 건,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했던 실행들이었다.


인간은 어쩌면 달아날 때 가장 큰 동력을 얻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때의 나를 보면서 하게 되었다.

다른 사업들을 미친 사람처럼 했다.

ESTP가 주야장천 나왔던 내 MBTI가, ENTJ로 바뀌어있을 만큼 기존의 나답지 않게 살아냈던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지금, 다시 브런치에 글을 적는 이 시점에 나는 확신할 수 있어졌다.

작년보다 훨씬 성장해 있다고.

물론, 이왕이면 폐업 없이 성장할 것을 더 권하긴 한다.

폐업은, 회복탄력성 테스트에서 상위 1%가 나왔던 나에게도 상당힌 회복(?) 기간이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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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글을 발행하라는 알림에 응하지 못해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오늘에야 이렇게 응답한다.


앞으로 더 자주 이곳을 찾기로 다짐하며,

밀린 일기를, 고백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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