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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도 낙원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말레이시아 직장인.

by 이월생

작년 11월, 폐업 소식을 알린 글을 끝으로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찾지 못했던 브런치.


그간은 내 생각을 굳이 글로 꺼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감정상태였음을 고백한다.

그러기 어려울 정도로 고단했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를 회복시키는데 온 힘을 쏟은 반년이었다.

그렇게 지금은 회복 완료!

회복탄력성이 타고난 재능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만큼 금방 괜찮아지는 사람이었는데,

경제적으로 무너지는 건 감정의 회복과는 또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음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아무쪼록, 지금은 흘러가는 일상 속 생각들을 기록해보고 싶을 정도의 여유를 되찾았기에 이 글을 시작해 본다.


인생 정말 한 치 앞을 모른다지만, 내가 말레이시아 직장인으로 살고 있을 거라는 옵션은 작년에도,

아니 내 일생 계획에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것을 계획하는 ENTJ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3년 전, 퇴사를 하며 두 번 다시 직장인으로는 살지 않겠다고 주변에 선언하며 무려 3개의 사업자를 내며 기세 좋게 오프라인 매장을 창업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고, 결국 젊은 나이에 동전크기의 원형 탈모를 얻고서, 기어이 폐업까지 하게 된 게 아마도 이곳에 전한 마지막 소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 글을 쓸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아니 옵션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에서 나는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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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취업 기회를 덥석 잡은 건, 어쩌면 도망을 친 것 인지도 모르겠다.

작년 말 폐업 후, 어디든 괜찮으니 잠깐이라도 내 곁의 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 선택이 크게 어렵지 않았던 걸 보면, 삶의 첫 실패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일이 그만큼 버거웠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오게 된 곳은 말레이시아!

올해 초에 왔으니 이제 거의 반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

지금까지의 후기는 주저 없이 한 문장으로 압축 가능하다.


"도망친 곳에도 낙원은 있다."


개인적으로 이곳이 너무 만족스러워, 나는 계속해서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왜 가족도, 친구도 없이 외로이 온 이곳에서 이토록 평안함을 느끼는지에 대해서.


처음엔 그냥 이곳에 내 일상을 가볍게 기록해볼까 싶었다.

하지만 지난 12월 3일 이후, 한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희망을 얻었고, 감사함을 느꼈고 그러다 문득, 설명하기 어려운 부채감 같은 것이 생겼다.


한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같은 질문에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부채 같은 책임감에 나는 내가 이곳에서 보고 겪는 한국 사회에 대한 거리감과 시선을 남겨보기로 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내 글은 절대 '탈한국'을 권하는 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처음으로 갖게 된 이 거리감을 통해, 한국, 그리고 그 안의 90년대생인 나와 내 주변인들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멀어졌기에, 더 솔직하고 가감 없이. 이 거리에서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보려 한다.


부디 이 글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누군가에겐 작은 위로가, 또 누군가에겐 유의미한 방향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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