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과 속도에 중독된 사회

90년대생의, 한국에서 살아남기 #2

by 이월생

처음 말레이시아에 오게 된 건, 이곳에서 먼저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분의 제안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국사람처럼 일하면, 무조건 잘될 수밖에 없다는 단호한 확언이 더해진 제안이었다.

'한국사람처럼'이라는 표현에, 근거 있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나는 한국인처럼 살 줄 아는 한국인이니까.


막상 내가 이곳, 말레이시아에 머물기를 결정하자, 그분은 내게 경고 아닌 경고를 건넸다.


"근데.. 여기 너무 오래 있지 마세요. 여기 오래 있다 보면 열심히 안 살고 싶어 져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문장이었다. 열심히 안 살고 싶어 지게 만드는 곳이라니.

동력이 나라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인가?


어느덧 말레이시아에 머문 지 6개월. 나는 이제 위 말을 정확히 이해한다.

어쩌면 저 문장이 말레이시아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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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을 소진하는 일에 크나큰 재능이 있다.

좋게 말하면 재능이지만, 이건 어쩌면 내성에 가깝다.

소진되면서도 이 정도는 버텨야지, 버텨내야지. 하는 '이 정도'의 역치가 무척 높은 곳.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소진하는 배경엔 언제나 효율성과 속도가 존재한다.

생산성을 기준으로 평가받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 모여, 더 빨리 더 높은 효율을 내는 것이 주 목표인 사회.


오죽하면 영화 '신과 함께' 속 나태지옥이 실존한다고 해도, 한국인은 절대 갈 수 없을 거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살아보니, 나태지옥에 한국인들을 위한 자리는 없겠다는 것에 공감하게 되긴 한다.

이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많이 쉬는 걸 목격한다.

쉬고 또 쉰다.

기본 연차가 19개. 정말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병가가 14개. 그 외 대체 휴무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근무시간 내에 정해져 있는 쉬는 시간엔 정말로 쉰다.

형식적으로 정해둔 쉬는 시간이 아니라, 쉬는 시간이라고 하면, 자리에 없어도 당연하게 이해받는 분위기랄까?


갓생 같은 건 결코 유행할리 없겠다 싶은 라이프 스타일 속에서 나는 왜 이 나라를 소개해준 대표님이, 이곳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지 말라는 경고 아닌 경고를 건네었는지 이해했다.

지하철조차 최단 환승 거리를 고려한 지정된 칸만을 타왔던 내가, 효율적이라는 게, 해야 할 일을 빨리 처리하고, 더 많은 양의 일을 해내는 게, 도대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한 의문을 가져보기 시작하게 되었으니까.


빠르고 효율적으로 달려가서 어디에 다 달으려고 하는 걸까?

어디에 가닿으면, 그 끝에서 매일 여유롭게 쉼을 가져왔던 사람들보다 더 괜찮은 삶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질까?

'빨리빨리'라는 한국말을, 한류의 영향 덕분인지 이 나라 사람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그중 몇 명은 그 이유를 내게 물었다.


"왜 너넨 모든 걸 빨리빨리 하려고 해?"

"빨리빨리 하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

"왜 효율적이어야 하는데?"

"그게 더 똑똑한 방법이잖아?"

"그게 너희를 더 행복하게 해? 만족시켜?"


글쎄, 대답할 수 없었다.

효율과 속도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만족? 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우리는 어떤 기준을 두고,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면서 만족하는 중인 걸까.


바쁜 건 악이다를 증명하는 사회 실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A에서 B건물로. 모집단을 둘로 나눠 한 집단에겐 촉박한 제한된 시간을, 다른 집단에겐 여유로운 시간을 주고 오도록 한 실험이다.

이 실험에 참가한 인원 모두는 건물로 오는 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때 촉박한 시간제한이 있던 그룹의 대다수는 그 사람을 돕지 않는다.

반면 시간적 여유가 있던 그룹의 대다수는 그 사람을 도왔다.

실험이 끝난 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는에 대해 두 집단 모두에게 물어봤는데, 놀랍게도 참가인원 모두가 그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위 실험을 통해 낸 결론은, 사람은 바쁘고 조급할 때, 이타적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바쁜 건 악한 거라고.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거라고.

이 실험을 보면서, 이게 어쩌면 정확히 한국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하지 않은 사람, 천성이 차가운 사람의 비율이 이 나라만 유달리 높을 리가 없다.

'정'이라는 고유의 가치를 몇 백 년간 가지고 내려온 나라인데, 선천적으로 따뜻하면 따뜻했지, 차갑고 메마른 사람들 일리 없다고 말이다.


문제는 그놈의 효율, 그리고 그놈의 속도다.

실험이 말해주듯, 사람은 시간에 쫓길 땐 어쩔 수 없이 주변을 놓치게 된다.

효율과 속도라는 수치적인 목표를 선순위에 두면, 어쩔 수 없이, 수치화되지 않는 다른 가치들은 무의미한 것들로 취급되고야 만다.


그렇게 한국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는, 수치화할 수 있는 모든 걸 빠르게 높은 곳에 올려두는 대신,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것들을 누락시키거나 외면해 버린다.

내면의 여유, 사람들과의 연결, 친절함, 따뜻함, 그리고 쉼. 같은 것들을.


살아온 방식이 있고, 해온 경험이 있기에, 나는 앞으로도 무언가를 하면서 효율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건 어쩌면 모든 한국인의 기본값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사회를 떠나온 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주어진 상황에서, 효율을 배제하고 행동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자동적으로 그 일이 어느 정도의 효율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계산이 시작된다.

왜 이렇게 세팅되어 있는 건지, 의문스럽다가도, 이게 한국인의 DNA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면, 회사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며 속도와 효율을 지양하자는 글을 쓰지는 않을테니까.


효율과 속도의 중독에서 벗어날 방법을 아직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효율적일 이유에 대해 떠올려보는 나날들이 길어지면, 언젠가 나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효율과 속도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생각을 시작해보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이 경험을 공유한 의미가 충분히 실현되었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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