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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 Jan 09. 2019

쉽게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전이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유 (1/3)

'도전은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며, 도전이 인생을 의미하게 한다.' 죠수아 J.마린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던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헬렌 켈러

'젊은 날의 매력은 꿈을 위해 무엇을 저질러버리는 데에 있다.' 엘빈 토플러.

'가장 훌륭한 일은 모험과 도전정신으로 이뤄진다.' 윌리엄.


도전과 실패에 대해서

우리는 방송, 기사, 자서전 같은 미디어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전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많다. 도전만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고, 실패를 감수하는 용기를 보였을 때 달콤한 성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전이란 게 마냥 좋기만 한 걸까? 그리고 ‘실패를 감수한다’는 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도전이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나도 동의한다.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들어앉아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혹은 그들만의 세상이라며 비관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질 못 하니까 말이다. 지금껏 변함없던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도전’만한 것이 없다. 도전은 변화의 첫걸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언가에 도전할 때, 실패할 경우를 함께 생각하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도전-성공이라는 달콤한 공식만이 가득할 뿐이다. 도전하기 전부터 실패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시작 전부터 초치지 말라, 부정 타니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킨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참 편리한 발상이다. 실패해도 경험했으니 괜찮다라며 넘어가면 되니까 말이다. ‘도전’의 또 다른 친구는 ‘긍정’이다.



실패는 결코 경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편, 실패를 감수하는 용기를 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패를 즐기는 자만이 성공이라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패하더라도 경험으로 여기며 그 과정을 즐기라고 한다. 글쎄, 실패를 단순히 즐기기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실패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나 혼자 기획한 도전이고, 실패의 규모도 작다면 다행일 순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관여되어 있고, 금전까지 투입된 상황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나 때문에 피해 입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껴본 적 있는가. 분노에 찬 시선이라면 다행이지만, ‘더는 신뢰할 수 없다’는 차가운 눈빛은 다시 회복하려 해도 회복할 수 없는 눈빛이다. 그리고 실패는 주변 사람에게도 퍼지는 힘이 있다. 실패한 나를 지켜보는 가족, 친구, 지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헤아려 보라. 실패는 결코 경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실패를 가볍게 생각하게 하는 것은, ‘실패’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사회도 한몫을 한다. 미디어 속에서 ‘도전’을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실패했던 과정들이 생략되어 있다. 실패의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자신들도 성공의 달콤함에 빠져 실패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다. 간혹 도전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주목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어두운 이야기에는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는,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사고에도 영향을 준다. 사회의 시선이 도전-성공 패턴에만 관심을 두자,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패배자로 취급 받는다. 도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들, 도전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손가락질 받는 사회이고, 당사자는 도전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소외된 삶을 살아간다.


나도 같은 사고를 지녔고, 그래서 도전했다. 실패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니 막상 실패했을 때,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실망감을 보이는 주의의 따가운 눈초리들, 나 때문에 피해 입은 사람들의 원망 찬 시선들. 그런 상황에서 실패를 단순히 경험으로만 여길 수 있을까. 실패의 맛을 제대로 느껴본 나는 또다시 도전할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도전하는 게 두려워진 것이다. 실패했을 때의 아픔이 얼마나 지독하고 뼈아픈지 느꼈으니까 말이다.




도전이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유

신입과 다를 바 없던 나에게는, 기존 직원과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성과나 실적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그들과의 차이는 더더욱 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간격을 좁히거나 뒤집을 만한 ‘성과’가 필요했다. 리스크가 크더라도 성공하게 된다면, 한순간에 입장을 역전시킬 그런 성과 말이다.


마침 관리인이 공석이었던 매장이 있었고, 팀장님은 그 관리인을 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맡아보겠다고 지원했다. 전 렌탈샵에서 매니저로 일했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그리고 강습뿐만 아니라 매장도 함께 관리하는 멀티플레이어 강사가 된다면, 다른 강사들과 분명한 차별점을 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일이 잘 풀리면 인정받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팀장님도 ‘매니저’ 경험을 고려해 흔쾌히 수락했고, 두 명의 직원을 붙여주었다. 직원들을 데리고 맡게 된 매장에 도착하니, 할 게 많았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정리해야 할 것들 투성이었고, 가장 시급했던 것은 매출이었는데, 렌탈샵 중 매출이 가장 저조했었다.

우선은 마당을 청소하고 스키·보드 등 장비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고객들이 붐빌 때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동선도 새롭게 짰다. 물론 이런 자잘한 것들은 팀장님이 붙여준 직원 2명에게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솔선수범의 방식을 선택했다. 내가 연륜이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커리어를 갖고 있었다면, 내 말에 ‘힘’이 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질 못하니, 직접 두 팔 걷고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직원 2명을 이끌고 근처의 매장들을 방문하며 사장님들께 인사드렸다. 이러한 행동은 전 렌탈샵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데, 나중을 생각한 행동이었다. 성수기가 되면 손님들이 동일 동 시간대에 몰려드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손님들이 장비를 골고루 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드는 쳐다보지 않고 스키만을 빌려 가기도 하고, 그 손님들이 공교롭게도 의류 사이즈가 똑같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손 놓고 손님이 다른 매장으로 가는 것을 바라보거나, 사전에 이야기해 놓은 매장으로 가서 장비를 빌려오면 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근처의 매장과 연동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다. 서로 강사들을 빌려 쓰기도 하고, 차량·의류·장비를 공유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는 끝났다. 달콤한 성공만을 기다리면 된다. 결과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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