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그리고 첫 해고 (1/4)
강습팀이 아닌 렌탈샵을 선택한 이유
10월이 되면 수상레저의 성수기도 막바지에 달한다. 손님도 드물었던 어느 날, 과장님이 곁으로 오셔서 ‘겨울에 할 거 없으면 스키장 일 소개해줄게’라고 말하셨다. 겨울스키도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소개해준 곳은 스키렌탈샵이었고 그곳 사장님은 나도 잘 아는 분이었다. 우리 옆에서 수상레저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는데, 우리 빠지로 놀러올 때마다 ‘너 맘에 든다, 겨울에 같이 일 해볼래?’ 말하셨다. 눈도장도 찍었겠다, 아는 분 밑에서 일하는 게 편할 듯싶어 일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작에 앞서 사장님과 미팅을 가졌는데, 여러 모로 계약조건에 놀랬다. 직원들을 관리하는 ‘매니저’ 직책을 주었기 때문이다. 겨울스키를 타 본 경험도 없었고, 렌탈샵에서 일해 본 경험도 없었는데 매니저라니. 이유를 여쭤보니 여름에 내가 일했던 스타일이 마음에 들고 겨울도 잘 하겠다고 믿음이 가서 매니저를 맡긴 거라고 말하셨다. 또 빠지 강사들이 추천하는 것도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했다. 다만, 겨울 경험이 없는 만큼 다른 직원들보다 일찍 들어와서 일을 시작하라고 했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서 알겠다고 대답했고, 유일하게 한 가지, 강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원래는 스키강습팀을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저업에 뛰어든 계기도 강사라는 직업을 경험해보고 싶었었다. 때문에 렌탈샵보다 강습 팀이 강사로 성장하는 데 더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다. 업무들이 강습에만 집중되어 있을 테고, 강사로 성장하기 위한 스키 이론·기술, 전문성도 강습팀이 훨씬 높을 테니 말이다.
고민 끝에 렌탈샵을 선택한 이유는 ‘그때의 나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선, 렌탈샵은 강습팀과 다르게 강습만 몰두하지 않고, 장비·의류 렌탈, 강습, 픽업서비스, 고객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이는 그 시절의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스키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과 스키장의 트렌드, 업계 관행 등이 부족했기 때문에, 먼저 스키를 파악하고 배우는 게 우선이었다. 그 후 강습이면 강습, 렌탈이면 렌탈 등 한 가지 전문성을 쌓는 게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렌탈샵을 선택했고, 그렇게 첫 직장은 시작됐다. 그동안은 아르바이트 느낌으로 일 했었는데, 이번에는 미팅도 갖고 계약조건도 조정해보니 어엿한 직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들뜬 가슴을 품에 안고 남들보다 일찍 스키장으로 출발했다.
처음 2주 정도는 사장님과 나, 단둘이서 생활했다. 나이차는 열 살 남짓했지만 서로 잘 맞아서 불편함이 없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하대하지도 않았고, 레저에 기본지식조차 없어 수준 낮은 질문만 하는 나에게 성심껏 대답해주셨다. 무엇보다 사장님의 인품이 뜻깊었다. 어느 날 사장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하지 못했고 나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장님은 나에게 ‘혼자 고생했을 텐데, 미안하다’며 정중히 사과했다. 놀라웠다. 윗사람이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는 일은 처음 겪어봤다.
그래서 확신했다. 사장님과 함께해도 좋겠다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말투나 행동에서 존경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장님의 말투와 행동만으로도 그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내 눈에 비친 스키장은 신세계였다
스키장이 시작되면서 직원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7명 정도였는데 나처럼 처음 일을 해보는 친구도 있었고, 겨울 일을 수년간 한 베테랑 친구도 있었다. 그 베테랑 친구가 우리들에게 스키를 가르쳐주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직원들과 함께 생에 처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던 스키를 타러 스키장을 방문했다.
신기했던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나는 스키장도 동물원이나 박물관처럼 입장권이 있다고 생각했다. 입구에서 표를 구매해야만 스키장 내부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입장권 같은 것은 없었고, 슬로프 구경부터 식당·쇼핑몰 등 부대시설을 포함한 스키장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물론 리프트권을 구매해야 스키도 탈 수 있고, 슬로프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를 갈 수 있다.
또한, 스키장은 거진 24시간 운영된다는 점이 놀라웠다. 정설시간을 제외해도 수상레저와 비교하면 24시간 운영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수상레저 때는 열정과 의욕에 불타올라도 해가 지면 더 이상 탈 수가 없었다. 반면에 스키장은 야간은 물론이요, 새벽에도 운영하기 때문에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미친 듯이 탔다. ‘아침 식사-오전스키-점심 식사-오후스키-저녁 식사-야간스키-쉬고-새벽스키-잠(4~5시간)’처럼 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4시간 운영된다는 점은 행복과 불행이 공존했다. 24시간 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손님) 24시간 손님들을 응대해야 한다는 말(직원)이 되기 때문이다. 손님이 되어보자. 24시간 운영은 너무 좋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스키장을 방문해도 좋다. 불금을 스키장에서 보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먼 지역에 사는 사람도 상관없다. 3~4시간 걸려서 도착해도 새벽스키가 기다릴 테니 말이다.
이제 스키장 관련 종사자가 되어보자. 오전·오후 손님을 응대했는데, 야간에도 손님이 몰려온다. 새벽에도 손님이 온다. 새벽에는 손님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르다. 오히려 새벽 타임만 노리는 마니아, 동호회들이 있다. 어떤 날은 운 좋게 새벽손님 예약이 없다 치자. 그러나 쉬거나 잘 수는 없다. 야간타임에 장비 렌탈한 손님들은 새벽에 반납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장비를 받기 위해서는 새벽에도 깨어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패턴들이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주말 혹은 성수기 때,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그때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직원 간 교대로 일하거나 장비 반납 받을 당번을 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음 날 오전에 푹 잘 수 있다. 군대에서 경험한 불침번을 떠올리면 좋다. 그러나 성수기 플러스 주말이 되면 얄짤없이 모든 직원이 가동되어 24시간 가까이 일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매니저였지만 직원들과 친구처럼 지냈고, 밥 먹다가 동료와 눈 맞으면, 바로 스키를 타러 올라갔다. 가끔은 사장님이 스키금지를 호령하는 날도 있는데, 그 다음날이 바쁜 주말인 경우 직원들이 피곤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사장님이 잠들기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 차 있는 곳으로 간다. 혹시나 시동 거는 소리에 사장님이 깰까봐, 5미터 가량 차를 밀고 나서 시동 걸고 스키장으로 올라갔다. 결국 나중에 눈치를 채시고 이제는 차 키를 직접 들고 주무신다. 그러면 스키를 어깨에 짊어지고 1시간 정도 걸어서 스키장에 갔다.
PS. 새벽타임을 즐기는 손님 유형, 새벽스키의 장단점
새벽타임이라 함은 12시부터 04시 늦게는 05시까지 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벽타임은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통상 모든 슬로프가 가동되지 않는다. 초보자 슬로프만을 운영하거나 중급·중상급 슬로프를 운영할 때도 간혹 있다. 때문에 다양한 슬로프를 즐길 수 없는 새벽타임을 찾는 손님은 현저히 적다. 이 시간대를 방문하는 손님 유형은, 대부분 늦장부리거나 길이 막혀서 늦게 도착한 사람이거나, 직장인이라면 퇴근 한 뒤 3~4시간 걸려 도착해 어쩔 수 없이 새벽타임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새벽타임에 스키를 타려는 부류도 있다. 새벽 시간대는 오전·오후보다 사람들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다양한 슬로프를 즐길 수는 없지만, 오전·오후에 몇 시간 씩 기다려 2~3번 리프트를 탈 바에는 한정된 슬로프라도 여러 번 타자는 것이다. 새벽타임만을 노리는 또 다른 유형은 바로 프리보더 등 마니아·동호회들이다. 그들에겐 높은 슬로프가 필요 없다. 오히려 프리보더를 제대로 즐기려면 초보자 슬로프가 적당하다(프리보더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추후 설명) 새벽에 스키장을 방문하면 가지각색의 프리보더들을 목격할 수 있다.
정리해보자. 새벽스키의 장점은, 오전·오후에 비해서 인구가 적다. 때문에 리프트를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탈 수 있다. 또한 본인이 초보자 혹은 중급자라면 한정된 슬로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점은, 본인이 중급자 이상의 실력자이고 중급 이상의 슬로프를 경험하고 싶다면 새벽스키는 적합하지 않다. 또한, 날씨도 춥고 주변 식당 같은 부대시설도 문을 닫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한 점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