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오후에 찾아뵙는 어르신은 12년 전, 작업 중 넘어지시면서 경추를 다치셨다. 그 일로 인해 2등급 판정을 받고 지금까지 누운 채로 생활하신다. 오전에 돌보는 할머니 어르신보다 더 긴장과 책임감을 안고 만나게 되는 분이다.
무엇보다 곁에서 할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피는 젊은 할머니가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예리하게 지켜보고 계시기에, 나 또한 더욱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임할 수밖에 없다.
처음엔 어르신께서 신체적 통증과 정신적 스트레스 탓에 이유 없는 화를 내시거나 야단을 치실 때, 속으로는 눈물을 삼키고 겉으로는 사뿐사뿐 움직이며 내 감정을 달래야 했다. 대소변을 돌보고, 굳어진 팔과 다리를 마사지해드리고 이발이며 목욕까지 정성껏 씻어드리면서 스스로에게 ‘나는 위대한 봉사자다’고 되뇌이며 버텼다.
간혹 힘든 마음에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은 위로보다 “그만두든지 다른 어르신으로 바꿔 달라고" 센타에 말하라고 한다.
그럴 때, 나는 아무 댓구도 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감당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문제는 스스로 받아들이면서 넘기고, 보다 깊은 갈등이 생기면 보호자인 할머니와 상의한 뒤, 마지막으로 센터에 이야기하는 순서를 따른다. 정성스러운 돌봄은 감정의 충돌을 줄이는 방식부터 배우는 일이다.
요양보호사들끼리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간을 빼놓고 일해야지.”
이 말은 곧, ‘나의 고집이나 방식은 내려놓고 오직 어르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라’는 뜻이다. 봉사는 곧, 자기중심성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이 일을 하며 절실히 느낀다.
지금, 이 어르신을 뵌 지는 어느덧 9년째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시며, 종종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신다. 그럴 때면 나는, 오토바이 사고로 경추를 다치셨지만 명절 연휴로 수술조차 못 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형부 이야기를 들려드린다. 어르신, 이렇게라도 살아계신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렇게 내 방식대로 조용히 위로해 드린다.
그래도 때로는 본인의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어헤칠 때도 있다.
나는 그때, 말없이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9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루에 4시간씩, 꾸준히 마주해온 시간은 말보다 깊은 이해를 낳는다.
처음엔 내가 하는 일이 어설퍼 못마땅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할머니는 조용히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요양보호사를 꼼꼼하게 보는 편인데, 당신은 앞 요양사보다 책임감 있게 일하는 것 같아 믿고 맡겼어요.”
그 말에 나는 작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집은 오전 어르신 댁보다 더 긴장되고 집중해야 하지만, 그래서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이분들을 통해 나 자신의 과한 집착과 번뇌를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욕심을 비우고, 진심을 담아 사람을 대하는 일. 그것이 삶의 본질임을 어르신을 통해 체득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바란다. 어르신께서 지금처럼 건강하게, 내가 성심껏 모실 수 있을 때까지 함께 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