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전마다 찾아뵙는 85세 어르신은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계신다.
자녀들의 걱정은 깊고도 크지만, 어르신은 유치원처럼 꾸며진 주간보호시설도, 요양병원도 마다하셨다.
그저 지금처럼 요양보호사인 나와 함께 조용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씀하신다.
이 어르신과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의 요양을 맡으면서 처음 뵙게 되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내 말투와 손길의 온기를 알아봐 주셨고, “끝까지 함께해달라”고 조심스럽게 당부하셨다.
요양병원에 가게 되는 날까지 곁에 있어달라는 그 말씀이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혼자 계신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르신은 밤이 되기도 전에 수면유도제를 드시고 깊은 잠으로
도피하듯 하루를 마무리하시곤 했다.나는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마음 아팠다.
그래서 퇴근 후에도 다시 이 댁을 찾게 된다.
저녁을 차려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TV도 함께 본다.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쌓이고, 어르신의 잠자리를 정돈하는 것으로 내 긴 하루가 끝난다.
이런 시간들이 이어지자, 어르신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기억력도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어쩌면 돌봄이란, 무언가를 해주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나누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르신은 나를 "우리 딸 같다"고 말씀하시며 과일을 챙겨주시고, 나를 반가운 사람으로 맞아주신다.
나 역시 마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다시 만난 듯, 감사하고 따뜻한 마음뿐이다.
요즘은 백세 시대를 넘어 ‘백이십세 시대’라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혼자 견뎌야 하는 노년의 외로움은 여전히 깊고 무겁게 다가온다
두 달 전 어르신이 침대에서 떨어지셨던 일이 있었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해 자칫 큰일로 이어질 뻔했다.
그 일을 계기로 자녀들은 방과 거실에 CCTV를 설치했다.
이제는 실시간으로 어머니의 하루를 지켜볼 수 있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웰빙도, 웰다잉도 결국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거창한 변화나 거대한 준비가 아니라, 조용하고 덜 외로운 하루가 노년을 견디게 하는 가장 따뜻한 처방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곧 한 생애다.’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인생 아닐까.
이런 마음으로 어르신과 보내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밤이 되면 문득 내 반려견 콜라와 반려묘 해리가 떠오른다.
이 아이들이 내 곁을 지켜주듯, 나도 어르신의 밤을 함께 지켜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시간이 아쉽고, 마음은 늘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그래도 나는 다짐한다.
욕심 없이 살아오신 한 어르신이 조금은 덜 지루하고, 덜 외롭게 하루를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지닌 따뜻한 마음으로 어르신의 고요한 밤을 지켜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