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희망을 견디며

by 노란민들레

혹독했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왔다.
뜨겁던 날씨만큼이나 마음속에서도 혹독한 나날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한 계절을 무사히 넘기고 가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고맙고 다행이다.

평생 처음으로 재개발이라는 큰일에 발을 들였다.
아파트 투자에 성공하리라는 막연한 기대 하나로, 스무 해를 버티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분양계약서를 쓰고, 집단대출까지 받았을 때만 해도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되겠구나 싶었다.
완공이 되면 직접 입주하든, 아니면 매매를 해서 자녀들 결혼자금으로 쓰든,
그 돈으로 노후에 해외여행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겠지 하는
조심스러운 꿈을 꾸며 살아왔다.
그건 뜬구름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었다.

그런데 착공을 앞두고 날아든 추가 분담금 통보서가
그 희망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순식간에 일상의 리듬이 깨지고, 그동안의 기다림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여러명의 조합원 중 대부분은 나처럼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다.
“큰일 났다, 이러다 다 날리는 거 아냐?”
누군가의 탄식이 귓가를 스쳤다.
불황이 길어지면 미분양 사태가 올 수도 있고,
그때 또 분담금이 늘어나면 내 집을 빼앗기거나
빚만 남을 수도 있다는 불안한 예언들이 돌았다.

서울은 34평대 아파트가 몇십억씩 한다는데,
부산에 내가 사는 곳의 7억대 아파트가 미분양이라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린 너무 순진했어. 그동안 바보였던 거야.”
남편의 푸념 한마디가 내 가슴을 짓눌렀다.
주식이 호황이라지만, 예전에 주식으로 큰 실패를 맛본 남편 덕분에
나는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빚 없이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그래도 다행히, 재개발 조합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존 조합장과 이사진을 해임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회의를 열고 발로 뛰고 있다.
착공이 늦어질수록 무서운 이자가 불어난다고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한화포레나의 명품 아파트가 완공되어
우리 같은 ‘바보 조합원들’의 멍든 가슴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길 바란다.

요즘은 불황의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도 마음속의 먹구름을 스스로 털어내고 싶다.
이번 달엔 꼭 주왕산이나 내장산 단풍놀이를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다.
계절은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진다.
무서운 희망이라도, 끝내 견뎌내면 언젠가 빛이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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