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자작나무님의 낭독으로 에크하르트 톨레의 '붙잡지 않는 삶'을 다시 들었다.
익숙한 문장인데도, 오늘은 왠지 더 낯설게 다가왔다. ‘놓아버림이 해방이다’라는 말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톨레는 말한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결국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욕망을 붙잡고, 두려움을 붙잡고, 분노를
꼭 움켜쥐고 살아간다고.
이럴 때 내 맡김이 필요하다고.
내맡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밝은 손전등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안개는 삶 속에서 만나는 많은 상황을 말하고 손전등은 깨어있는 현존을 말한다.
그래서 그 손을 놓으면, 저절로 자유가
따라온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손에 많은 것을 들고 있다.
과거의 상처, 현재의 불안, 미래의 걱정.
심지어 놓으라는 말조차, 마음 안에서 다시 쥐고 놓질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쯤에서 문득 떠오른 말이 또 있다. 방하착(放下着).
불교에서 말하듯, “놓아버려라.”
생각을 놓고, 욕심을 놓고, 내 주장과
아집을 놓아버릴 때.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 앞에
진짜 내가 드러난다고 했다.
조주 선사의 그 유명한 선문답도 생각났다.
한 스님이 물었다.
“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무슨 뜻일까?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라는 뜻일까.
아무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판단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잣나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잔잔해진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도 어쩌면 괜찮다는
위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 밤 나는,
욕심도 분노도 저항도 다 내려놓고
그저 앉아, 마음속의 잣나무를 바라본다.
내가 찾는 자유와 깨달음도
어쩌면 그 나무 아래, 조용히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