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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은 Dec 29. 2022

권위를 세우는 법


  반존대. 반말과 존대를 섞어 쓰는 말이다. 검색창에 반존대를 입력해보니 연관검색어로 ‘설레는 반존대’가 나온다. 연하의 이성이 연상에게 재치와 박력을 보여주는 게 반존대란다. 존댓말에는 예의에서 파생되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여기에 양념처럼 반말이 섞여 있으면 친숙함의 밀도가 높아지겠지. 밀고 당기기의 기술이 반존대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반존대가 설렘이 아님 불쾌함으로 다가오는 순간도 있다. 일을 할 때다. 개인적으로 당황스러운 경험이 있다. 진행자로 행사장에 갔는데, 주최측 관계자가 인사를 나누자마자 반존대를 했다. 진행자로 참고해야 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아랫 사람한테 지시하듯 하는 말버릇은 덤이었다. 정색하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애매한 상황. 우선 일은 완벽하게 마쳐야 하니, 별말 없이 참았다. 행사를 마치고 고생했다는 감사 인사와 다음 행사도 함께 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아주 크고 두꺼운 엑스표를 여러 번 그었다.      


  그날 이후 꽤 오랜 시간 마음이 무거웠다. 장마철의 꿉꿉한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마도 그의 말에서 사회 초년생 때 마주했던 수많은 갑의 얼굴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는 양념 같은 반말에 권위가 담겨있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쉽게 말을 놓지 않는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입사 시기나 경력으로 내가 위라고 해도. 상대방이 먼저 말을 편하게 하라고 재차 재촉해도 시간이 걸린다. 관계의 친밀성이 충분히 쌓였을 때 비로소 말을 놓는다. 말을 편하게 하는 순간 선을 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조언을 늘어놓는다든지, 나도 모르게 불쾌한 표현으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든지.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고 권위를 세울 줄 모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말에는 존중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진정한 권위는 존중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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