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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23. 2022

좌파와 우파,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공유와 사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좌파와 우파는 18세기 프랑스 혁명기부터 사용된 개념입니다. 흔히 지금은 쓸모 없어 졌다고 평가받지만, 여전히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 각국의 정치인이 정치성향을 구분할 때 애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좌파가 평등을, 우파가 자유를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너무 단순한 정의입니다. 좌파도 기여에 따른 불평등한 분배나 불평등한 정치제도를 지지할 수 있고, 우파도 평등한 자유권, 평등한 참정권, 평등한 복지권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좌파와 우파는 평등과 자유를 각각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진국의 좌파와 우파는 '평등한 자유'라는 근대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만, 어떤 자유를 얼마나 평등하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다릅니다. 단순히 '좌파는 평등, 우파는 자유'라는 프레임으로 정치사상이나 정책을 분류한다면, 이런 복잡한 모습을 외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좌파는 평등, 우파는 자유' 프레임이 문제에 대응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점입니다. 좌파가 매 순간 평등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으면, 합당한 불평등 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평등지상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우파가 언제나 자유만 옹호해야 한다고 믿으면, 도덕이나 공익 등 다른 가치를 근거로 자유를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을 모조리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 근거 있게 이념을 추구하고, 변하는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근거 없는 통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치사상이나 개념을 다루는 책을 읽다보면, 대체로 하나의 정답을 찾기 어렵다는 고백부터 접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모든 단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의미가 다르기 마련입니다. 정치사상이나 개념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사상 중에, 한 두 사람이 이론부터 이름까지 철저히 계획해서 퍼뜨린 것은 많지 않습니다. 언론인이나 정치인이 누군가의 이론에 멋대로 이름을 붙여서 그 이름대로 유행하게 된 경우도 있고, 정치사상가가 유행하는 이름을 빌려서 자신의 이론에 붙인 경우도 있습니다. 기존의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려는 노력이 통하게 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좌파와 우파 개념도 이처럼 무질서하게 유행했습니다. 


처음 좌파와 우파 개념이 등장한 시기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입니다. 혁명이 끝나고, 권력을 쥔 국민공회는 붙잡은 왕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를 두고 갈라섰습니다. 이 때, 의장석을 기준으로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온건파 의원들이 오른쪽 의석에, 왕을 처형시키고 곧바로 공화국을 건설할 것을 주장한 급진파 의원들이 왼쪽 의석에 앉았습니다. 이것이 좌파와 우파라는 이분법의 시초입니다. 최초의 좌파는 공화국을 향한 급진적인 전진을, 최초의 우파는 입헌군주제를 통한 왕정 보존을 원했습니다. 


('보수주의자'라는 단어도 이때 처음 유행했습니다. 이 시기에 보수주의자는 왕정과 옛 질서를 수호하려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나중에 영국이 프랑스어 단어인 '보수주의자'를 수입해서 '보수주의'와 '보수당'이라는 단어로 응용합니다.) 


지금은 프랑스 혁명기의 좌파, 우파 개념을 고스란히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세계에 공화국이 아닌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입헌군주국이라도 사실상 공화국이나 다름 없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현대에는 지금 당장 공화정으로 나아가자는 주장도, 왕정을 보존하자는 주장도 큰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라는 이름은 각지에서 다른 의미로 계속 활용되고 있습니다. 원래 덴마크에서 '좌파'는 농본주의와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을 의미했습니다. 지금도 덴마크 자유당은 현지에서 벤스터(좌파당)라고 불립니다. 현대 덴마크에서 벤스터 대신 좌파 위치를 차지한 것은 자유당이 아니라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입니다. 시간이 흘러 의미가 달라진 것입니다. 


"'좌파'와 '우파'는 고정불변의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상이한 의미를 갖는다. (...) 좌파가 우파의 대립항이라는 사실은 그저 동시에 좌파와 우파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 대립하고 있는 양측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 노르베르토 보비오, '제3의 길은 가능한가' 


이처럼, 좌파와 우파 개념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른 의미로 통합니다. 학자들의 의견도 다릅니다.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를 두고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좌파가 평등, 우파가 불평등을 옹호한다고 정의합니다. 전문가들도 여태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좌파 또는 우파인가'하는 문제에, 전세계, 모든 시대에 통용되는 단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이쯤되면, 좌파와 우파 개념은 정말 무의미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로 정치성향을 나누는 일은 세세한 의미가 달라지더라도 계속 활용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단순한 이분법을 좋아하고, 새로운 이름을 유행시키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정답은 없어도 관찰 가능한 경향은 있습니다. 대체로, 좌파는 '우파에 비해' 사회 구성원이 부나 권력을 더 많이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우파는 '좌파에 비해' 개인이 부나 권력을 더 많이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한 사회에서 무엇을 얼마나 공유하고 사유할 것인지에 따라서 좌파가 우파가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공유와 사유'야말로 역사 속 거의 모든 좌파와 우파를 관통하는 기준입니다.


최초의 좌파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공화주의자와 영국 차티스트는 왕과 귀족이 독점하던 정치 권력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최초의 우파인 프랑스 왕당파와 보수파는 전통 귀족 계급과 세금을 많이 내는 부르주아만 정치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좌파의 대명사로 통하는 사회주의자는 정치 권력 뿐만 아니라 소득의 일부와 기업 경영권, 사회 구성원이 처하기 쉬운 위험까지 사회가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보다 급진적인 좌파인 공산주의자는 거의 모든 부를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우파의 대명사로 통하는 보수주의자는 자본가가 더 많은 부를 쥐고 이익과 위험을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보수주의자 중에는 사회적 격차에 신경 쓴 사람도 많지만, 좌파에 비해 더 적은 것을 공유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엄연히 우파입니다.


우리나라 정당도 같은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진보정당은 사회적 약자를 더 넓게 정의하고, 기본소득이나 기본주택,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약자를 위한 제도를 더 많이 요구합니다. 반면, 국민의힘 등 보수정당은 진보정당에 비해 사회적 약자를 좁게 설정하고 안심소득제처럼 약자를 위한 제도를 더 적게 요구합니다. 모든 제도는 정부가 예산을 집행할 때 실현되고, 정부 예산은 일종의 공유 재산이라는 점에서, 진보정당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유를, 보수정당은 더 많은 사유를 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제로 주요 정당들이 한 사회에서 공유와 사유의 비율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좌우파가 나뉘는 경향을 보입니다. 따라서, '공유와 사유의 상대적 비율'은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 역시 정답은 아닙니다.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한 가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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