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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Sep 17. 2023

남 탓하는 보수 예술가

예술이 진보 편향적인 이유

보수적인 사람들은 우리나라 예술계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소설이든 영화든 진보적인 가치를 주로 담고 있다는 이야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계급 사회를 고발하는 '기생충'이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로 통하고, 예능 '나 혼자 산다'에는 트렌스젠더가 출연한다. 이런 상황 탓에 예술은 원래 진보적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듯하다.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소설가이자 보수논객인 복거일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 안 보이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이승만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현시대의 어려움은 하찮게 여겨지지요. 우리는 절망할 권리도 없다는 걸 느낍니다."

보수 예술가가 왜 대중성 경쟁에서 밀려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상에 치이는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받기 보다 기분 나쁘지 않을까. 저런 식으로 따지면, 외국으로 나가서 도움받을 수 있는 시대를 산 이승만도 그 이전 시대의 영웅들에 비하면 별 거 없다는 식으로 무한히 소급되지 않을까.

물론 한계를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불우한 어린시절이나 사회적 차별을 겪고도 자본주의의 정점에 선 사람들이 동기부여 소재로 활용된다.

하지만 복거일 선생은 이승만 박사의 삶으로 현대인의 아픔을 위로하려는 생각이 없다. 그랬으면 우리에게 절망할 권리가 없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됐다. 작가 본인의 발언과 요즘 상황을 보면, 이승만 박사의 삶으로 소설을 쓴 이유는 현대인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문화 전쟁에 참전해서 보수 가치를 퍼뜨리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의도한 목적이 그게 아니라고 해도,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정치적인 의도가 보이는 찬양 소설이 과연 얼마나 유행할까.

복거일 선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칭 보수 예술가 상당수가 강경하게 보수적인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할 뿐,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진자운동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하지는 않는다. 과잉 경쟁과 불공정한 기회, 만성적인 저소득과 높은 생활비 부담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보수 예술가는 우리나라가 그렇게 나쁜 상황이 아니라는 훈계만 반복할 뿐,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공감하지 않는다. 그러니 보수의 유시민, 진중권, 노회찬으로 불리는 사람이 나타날 리 없다.

보수적인 콘텐츠가 예술 시장에서 불리한 탓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사람들의 보수 성향에 맞는 작품들이 주류를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전원 일기'는 잊혀진 대가족의 일상과 유대를 담담하게 표현해서 아직도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최근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인 짱구 극장판이 가족의 정, 아버지의 무게 등 충분히 보수주의로 품을 수 있는 가치를 앞세워서 우리나라 극장가를 휩쓸었다. 보수적인 가치도 잘 꾸미면 대중적인 호소력이 있는 셈이다.

역사 사례도 있다. 19세기 영국 보수당을 이끈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는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디즈레일리 총리는 두 국민으로 분열된 가상 사회를 묘사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화 탓에 자본가와 노동자로 양분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파업이 일어나고 무력으로 진압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디즈레일리 총리는 이런 현실을 고발한 책으로 영국 보수주의의 새 흐름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영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서구에서는 보수도 예술의 힘으로 세상을 움직였다.

우리나라 보수는 똑같은 콘텐츠를 참신하지 않은 방법으로 재생산해 왔다. 그 결과, 인터넷 서점에는 진보적인 가치를 전제하는 듯한 작품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다득 채우게 되었다. 과거에는 보수적인 작품만 유통되었다. 아예 정부가 건전가요를 지정하고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작품을 검열했다. 보수 예술가는 이념 경쟁에서 벗어나서 안락하게 작품을 공급한 것이다. 경쟁에서 벗어난 사람의 결말이 어떤지, 보수적인 사람들이 제일 잘 알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남 탓하지 말라고 가르쳐 왔다. 그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보수 예술가들이 언행일치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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