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자본주의를 대하는 다른 방법
기독교는 자본주의에 마냥 관대하지 않았다.
이랜드 창업주 박성수 회장은 젊을 때부터 성실하게 교회를 다니며 헌금을 냈지만 노동착취로 악명 높다. 2016년 12월, 이랜드는 직영매장 직원 4만 명에게 임금 83억 원을 지급하지 않아서 고용노동부로부터 조사받았다. 올해 12월에는 직원들을 교회 송년 행사에 무상으로 동원해서 또 조사받았다. 20년 전에도 임금체불과 노조탄압 탓에 곤욕을 치렀지만, 여태 나아진 게 없다. 그런 이랜드는 꽤 오랫동안 기독교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자랑해 왔다. 대체 박성수 회장에게 기독교란 무엇일까.
박성수 회장만 그런 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기독교인이 사회적 약자와 사회문제에 냉담하다. 특히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갈 곳 없는 노인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면서도 정부의 사회보장정책에는 거부감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예로부터 기독교인은 개인의 자선활동과 봉사정신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꼭 기부를 호소하는 데에서 멈출 이유는 없다.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산업혁명 이래로 서구 기독교 교회들은 정부 역할도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독일을 만든 숨은 주역, 가톨릭 교회.
독일은 복지국가들의 대선배다. 우리나라가 군인들에게 모래 섞인 쌀을 지급했다가 곤욕을 치른 1880년대에, 독일은 가장 먼저 노동자를 위한 의료보험과 산재보험을 도입했다. 당시 독일에서 사회보험 도입을 주도한 사람이 비스마르크 총리였기 때문에, 이 때 도입된 사회보험과 닮은 복지제도를 묶어서 '비스마르크식 복지체계'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1977년이 되어서야 대기업 종사자를 위한 비스마르크식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독일은 우리보다 90년 정도 앞선 셈이다.
독일은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사회보험을 확대하면서 모범적인 복지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죽었다. 다시 말해, 두 차례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파괴한 뒤에도 독일이 복지국가로 남을 수 있던 것은 폐허가 된 독일을 다시 일으키려 한 사람들의 공로였다. 전쟁 전에 도입된 제도를 그대로 가져 올 수는 없었을텐데, 전후 독일을 책임진 사람들은 무엇을 지침 삼아서 복지제도를 재건했을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 지침 중 하나가 '가톨릭 사회교리'였다.
가톨릭 사회교리란 이렇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 답게 사회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교황을 정점으로 둔 성직자가 성도를 이끄는 구조인 만큼, 가톨릭 교회는 성도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가르침을 꾸준히 정돈해 왔다. 그 가르침을 묶은 것이 바로 가톨릭 사회교리다.
현대 가톨릭 사회교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동등하게 존엄하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인격이고, 누구도 도구처럼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모든 사람은 자유로워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간섭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성장시키고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함과 자기를 완성할 자유는 공동체가 함께 달성해야 할 '공동선'이며, 모든 사람은 공동선을 증진하는 일에 참여해야 할 의무를 진다.
경제질서 역시 공동선에 부합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재산권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정당하게 재산을 축척하고 활용해야 한다. 특히 기업가는 노동자에게 적절한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노동착취는 하느님에게 복수를 비는 것만큼 중대한 잘못이다. 또한 시장경제가 매번 공동선에 부합하게 작동하지는 않기 때문에, 국가는 모든 사람이 존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 때, 개인과 지역사회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일까지 통제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개인을 억압하는 일 역시 공동선을 위협하는 일이다.
"자본가와 고용주가 대체로 명심해야 할 원칙은 자신의 이윤 추구를 위해 곤궁하고 불쌍한 사람을 억압하고 이웃의 비참함을 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법과 실정법이 모두 금지한다는 사실이다."
-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가톨릭 사회교리와 기독교민주연합
사회교리를 보면 알 수 있듯, 가톨릭 교회는 자본주의에 마냥 관대하지 않았다. 중세시대에 고리대금업을 금지한 것처럼, 산업혁명 이후에는 노동착취와 무제한적인 이윤추구를 금지했다. 물론 교회는 공산주의를 교회의 적으로 여겼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자본가와 노동자가 조화롭게 공존하기를 바랐지, 계급전쟁으로 노동자만의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교회는 공산주의도, 자유방임 자본주의도 아닌 세번째 길을 제안했다.
그 세번째 길을 걸은 것이 바로 독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서독일에서, 보수적인 가톨릭 성직자와 정치인은 프로테스탄트와 함께 하나의 기독교 정치세력을 만들고 싶어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콘라드 아데나워였다. 당시 가톨릭 신자들은 나치즘의 잔재를 청산하고 마르크스주의자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야 기독교 사회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가톨릭 신자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1950년대 서독일에서 가톨릭 신자는 44% 정도였는데, 이정도로는 기독교인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창출하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가톨릭 신자가 적은 지역에서는 사회민주당이 큰 격차로 앞서고 있었다. 기독교 사회를 지키려면, 교파를 초월한 단일 기독교 정당이 필요했다. 아데나워 등 보수 정치인은 연합 작업을 서둘렀고, 가톨릭 성직자들도 동참했다. 그 결과물이 훗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배출하는 '기독교민주연합'이다.
과정은 어수선했지만, 신, 구교 연합은 효과를 발휘했다. 첫번째 총선에서 기독교민주연합은 정권을 잡았고, 연합을 주도한 콘라드 아데나워는 총리가 되었다.
아데나워 총리는 당 내 기독교 사회주의자와 격하게 갈등할 정도로 시장경제를 아꼈지만, 기본적으로 가톨릭 신자였다. 1950년대 초반 아데나워 총리는 대기업의 감사회에 노동자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할 권리를 '공동결정권'이라고 부른다. 당시 많은 독일 사람들이 공동결정권을 지지했는데, 여기에는 가톨릭 교회의 역할도 컸다. 1950년대 독일에서 교회의 권위는 지금과 수준이 달랐다. 공동결정권 외에도, 아데나워 총리는 독일 국민 다수를 자산자로 만들기 위해 주택을 공급하고 정부가 소유하고 있던 기업 주식을 소액주주에게 판매했다. 이 또한 인간이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가져야 한다는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도출된 결론이었다.
이런 아데나워 총리의 정책은 독일 특유의 자본주의 경제질서, '사회적 시장경제'의 출발선으로 통한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만드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가톨릭 성직자와 성도들은 기독교적인 독일을 지키기 위해 기독교민주연합을 만들었고, 이후 유럽 사회에서 종교의 권위가 약해질 때까지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선진적인 복지국가 독일에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영향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셈이다. 지금도 가톨릭 교회는 폭주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정부가 적절하게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는 독점들의 상황이 발전에 어떤 장애를 가져오거나 발전을 지연시킬 때, 자신의 권위로 개입할 권리가 있다."
- 199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통제
프로테스탄트도 자본주의에 꽤나 엄격했다. 막스 베버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장 칼뱅은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통한다. 마치 칼뱅이 무한경쟁 자본주의를 만들었고 또 그런 자본주의를 정당화했다는 식으로 많은 사람이 이해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칼뱅은 억울할 것이다. 칼뱅은 당시 급성장하던 자본주의에 목줄과 입마개를 채우는 데에 죽을 때까지 헌신했기 때문이다.
1530년대부터 유럽 곳곳에서 인쇄소 직인이 파업을 일으켰다. 당시 유럽에서 직인의 처지는 같은 길드 소속 장인에게 배우는 제자에서 임금노동자로 바뀌는 과정에 있었다. 가장 큰 파업이 일어난 곳은 프랑스였는데, 당시 프랑스 왕실은 직인의 파업을 엄격하게 금지해서 대응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1570년대까지 파업이 반복되었다.
프랑스와 가까운 제네바에서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1550년대, 낌새를 발견한 제네바 정부는 프랑스처럼 대응하려 했다. 이대로 가면 프랑스처럼 대대적인 파업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당시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하던 칼뱅과 목사들이 중재에 나섰다. 우선 목사들은 고용자와 노동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협의체를 조직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목사들이 공익위원을 맡는 노사정위원회를 꾸린 것이다. 목사들은 협의체에서 합의된 사안을 제네바 정부에 전달했고, 제네바 정부는 합의안을 법으로 공포했다. 그 덕에 제네바에서는 노사가 완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웃나라 인쇄업이 불타는 동안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었다. 만약 칼뱅이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믿었다면, 노사정이 중앙에 모여서 이익을 조정하는 사회적 코포라티즘을 선보였을까?
이 외에도 칼뱅은 임금 착취를 예방하기 위해 근로계약서 작성을 적극 권장했고, 제네바 정부를 움직여서 이자율 상승을 억제했다. 칼뱅 탓에 은행업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칼뱅의 대부업 규제는 엄격했다. 이런 실천은 단순히 제네바를 잘 통합하려는 임시방편이 아니었다. 칼뱅은 임금을 신성한 것으로 여겼고, 이자로 돈을 버는 행위를 죄악으로 여겼다. 칼뱅에 따르면, 신이 세상에 부자와 빈자를 두는 이유는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다. 부자는 정직하게 돈을 벌어서 필요한 만큼을 남기고 사회에 환원할 의무가 있고, 빈자는 아무리 가난해도 죄를 저지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 칼뱅은 이런 교리에 따라 제네바를 개혁하려 했다. 막스 베버의 주장과 다르게, 칼뱅주의는 자본주의를 마냥 긍정한 적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훈육했다.
사실 현대 사회학에서 베버의 주장은 폐기된지 오래다. 베버는 진짜 칼뱅 신학이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던 통념을 기반으로 사회현상을 분석했다. 이후 신학과 경제역사에 대한 연구가 발달하면서, 베버의 진단을 반박하는 증거가 쏟아졌다. 다만 물질적인 것에 집중한 마르크스와 다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를 분석하는 법을 개척했다는 점이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아직도 칼뱅을 자본주의의 화신처럼 여기고 있다.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통념이 베버를 숙주 삼아서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셈이다.
칼뱅은 자본주의에 엄격했다. 일부 신학자는 칼뱅 사상을 아예 사회주의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와 뚜렷하게 선을 긋는, 자유주의적인 사회주의다. 칼뱅은 공산주의를 싫어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토마스 뮌처처럼 농민반란을 주도하며 재산권 폐지를 요구한 기독교 공산주의자도 있었지만, 칼뱅은 재산권이 기독교 윤리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칼뱅은 현대 사회주의자가 참고할 수 있을 정도로 제네바 경제를 적극 관리했고, 칼 바르트와 폴 틸리히 같은 후배 신학자도 기독교사회주의 운동을 벌였다. 다시 말해,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자본주의를 적절히 통제할 것을 요구했다.
"누구든 고된 일을 하고도 자신과 가정을 위해 빵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일할 수 있는 손과 의지를 갖고도 일거리가 없어서 굶주리거나 거지로 전락하는 것 역시 더더욱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 아브라함 카이퍼.
예수는 목수였다.
기독교는 자본주의를 절대 그냥 두지 않았다. 가장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자선활동에 의존했지만 동시에 탐욕에 분노하며 개개인의 행동을 바꾸려 했다. 가장 급진적인 기독교인은 아예 자본주의를 폐지하려 했다. 어느 쪽이든, 기독교인은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내 이익만 쌓는 일을 좋게 보지 않았다.
최근 우리나라 기독교는 동성애자, 공산주의자와 싸우는 데에 전념하고 있다. 적어도 뉴스에 비치는 모습은 그렇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가난한 청년이 고시원에서, 외로운 노인이 낡은 빌라에서 굶고 있지만, 교회는 그런 일에 진지하게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해마다 기독교의 위기가 거론되는 게 아닐까.
사실 우리나라 기독교에도 멋진 시절이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을 요새 삼아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지켰고, 장기려 박사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시초가 되는 의료보험조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지금도 여러 신실한 신도가 노동자, 동성애자, 재난 피해자 곁에서 자본주의를 견제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기독교에는 이미 훌륭한 자산이 있다. 고대 로마를 감화시킨 힘이 우리나라에서만 발휘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해야 할 일은 이미 선배 성도들이 다 보여 줬다. 남은 건 뒤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는 일 뿐이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하고, 삶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제공해야 하며, 인간적이고 행복한 노동이 될 수 있도록 안전조치들을 취하고, 충분한 여가를 주어야 한다. 어쩐 직업이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그런 조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나 사회의 의무이다."
- 이오갑
참고자료
1. 독일의 사회보장제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2. 하성진, 왜 또 독일인가, 맑은 나무, 2016.
3. 문수현, 현대독일정치사, 역사비평사, 2023.
4.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 주원준 옮김, 눌민, 2020.
5. 이오갑, 칼뱅, 자본주의의 고삐를 쥐다, 한동네, 2019.
6. 송용원,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본 '경제민주화' - 칼뱅을 중심으로, 장신논단 Vol 52 N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