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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an 11. 2024

자유가 유연해져야 하는 이유

피시즘은 강하다

2024년 1월 7일 로마에서 한 파시스트 행동가가 외쳤다. "쓰러진 동지들을 위해!" 그러자 수백 명의 파시스트가 오른손을 쭉 뻗으며 응답했다. "프레젠테!" 이탈리아어로 프레젠테(presente)는 영어로 present, 우리말로 현재, 지금이라는 뜻인데,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즐겨 쓰는 구호다. 여기서는 죽은 파시스트 동지가 살아있는 동지들의 기억 속에서 지금도, 앞으로도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구호가 1924년도 아니고 2024년에 로마 한복판에서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이번 파시스트 집회는 이탈리아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었다. 지금의 이탈리아 공화국은 1943년부터 파시스트에 대항해서 파업과 내전을 벌인 끝에 무솔리니를 처형한 저항자들이 세운 나라다. '반파시즘'이 공화국의 정통성이자 정체성인 셈이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파시즘을 옹호하거나 선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2005년, 축구선수 파올로 디 카니오가 경기 도중 파시스트처럼 경례하자,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는 카니오에게 벌금으로 1억 유로를 부과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파시스트를 몰아내지 못했다. 유튜브에서 네오 파시스트 관련 뉴스를 검색해 보면, 5년 전에도 수백 명의 네오 파시스트가 모여서 "쓰러진 동지들을 위해!" "프레젠테!"라고 외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회 장소도 로마, 밀라노 등 다양하다.

결정적인 사건은 2022년에 일어났다. 그 해 총선에서 네오 파시스트 출신 정치인들이 만든 정당인 '이탈리아 형제들'이 원내 1당이 되어 총리직을 차지했다. 그 총리가 바로 조르지아 멜로니다. 물론 멜로니 총리는 옛 파시즘과 애써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정치 안정과 테크노크라시 종식을 위해 총리 직선제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 극우 포퓰리즘으로 발전한 새로운 파시즘을 국정철학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도 처음에는 실용적인 중도를 흉내냈지만 지금은 종신집권에 다가서고 있으니, 멜로니 총리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 이탈리아는 사실상 검은 셔츠를 벗은 파시스트 형제들에게 손발을 붙잡힌 셈이다.

이탈리아 사례는 파시즘을 뿌리뽑는 게 얼마나 지난한지 보여준다. 파시즘에는 뚜렷하고 일관된 이론이 없다.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고집하고 자유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혐오한다는 점 외에는 파시스트마다 생각이 너무 다르다. 그래서 정치학자들도 파시즘을 몇 마디로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모호함이 파시즘이라는 미세먼지를 퍼뜨리는 황사일지도 모른다. 뚜렷하고 일관된 이론이 없다는 말은 접근하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론과 인터넷이 발달한 탓에 오히려 가짜 정보가 넘치는 상황에서는,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다소 모순될지 몰라도 이해하기 쉬운 행동 강령이 더 환영받을 수 있다. 파시즘 특유의 시원시원함이 기성 정치의 답답함과 대비된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요즘 파시스트는 본모습을 숨기고 매력을 키울 줄 안다. 그래서 파시즘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파시즘은 바퀴벌레다. 멜로니 총리와 에르도안 대통령이 보여준 것처럼, 요즘 파시스트는 자유주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기회를 노린다. 따라서 좌파든 우파든, 법치국가와 건설적인 공론장을 아끼는 자유주의자라면 파시즘이 집에 알을 낳기 전에 애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 자유주의자에게는 뒤따를 만한 모범 사례가 있다.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자유주의 기본질서를 지키는 사회주의 정당이다. 과거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덴마크의 정체성을 복지국가로 규정하고 덴마크인을 여러 세대에 거쳐 복지국가 유지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한정하는 복지 내셔널리즘을 퍼뜨렸다. 지금도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민과 난민 장벽을 유지하고 있다. 그 덕에, 덴마크는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극우정당의 기세도 꺾을 수 있었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이 국경을 크게 열었다가 낭패를 본 것과 대조된다.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유연하게 타협했고, 그 덕에 자유주의적 기본질서를 지킬 수 있었다.

사람의 인내력에는 한계가 있다. 낯선 것에 적응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가뜩이나 경제도 불안정한데 다문화, 트렌스젠더, 정치적 올바름을 지금 당장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지갑과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자체를 혐오하게 될 것이다. 정면승부가 어렵다면 우회로를 골라야 한다. 이민과 난민을 조절하고, 새로운 젠더 문제를 뒤로 미루고,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해야 한다. 동시에 다수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안전망을 키우고 형법을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익숙함을 너무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신속하게 처리한다면, 자유주의 기본질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자유주의자에게 필요한 것은 견고함을 위한 유연함이다.

참고자료.

1. Hannah Malone, The Fallen Soldier as Fascist Exemplar, Cambridge University Press,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Volume 64, Issue 1, 2022.

2. 케빈 페스모어, 파시즘, 이지원 역, 교유서가, 2016.

3. 오창룡, 덴마크 우파 표퓰리즘 정당의 분화, 유럽연구, 제41권 4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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