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알바를 응원하며
[서비스업 경력만 화려해지는데 괜찮은 건가] 도입부
"다음에 또 오세요." 인사가 끝났는데 짬뽕집 알바가 나를 계속 쳐다 봤다. 서로 눈을 두 번 깜빡일 동안 정적이 흘렀다. 눈을 세 번째 깜빡일 때 비로소 문제를 깨달았다. 아, 내가 손님이었지 참. 카드를 돌려받고 멋쩍게 웃으며 가게 밖으로 나왔다. 습관의 힘이란.
나는 열아홉부터 아르바이트로 일했다. 사실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빠가 죽고, 엄마는 신용카드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다가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경력이 단절된 가정주부가 곧바로 충분한 생활비를 벌 수는 없었다. 엄마는 개인회생 변제금을 5년 동안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엄마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두 형제 중에서 동생은 이제 중학생이었으니, 남은 것은 곧 성인이 되는 나 뿐이었다.
개인회생이 시작되면서부터 파리바게트에서 1년 반, 다이소에서 2년 반 동안 일했다. 처음 파리바게트에 들어갔을 때는 최저시급이 4860원이었다. 심지어 수습기간도 있어서,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월급으로 80만 원 정도를 받았다. 그 중에서 5, 60만 원을 엄마에게 주고, 10만 원을 출퇴근비로 쓰고, 나머지를 내가 가졌다. 2017년에 시급이 6470원으로 올랐을 때, 내 통장에 처음으로 40만 원 넘는 돈이 남은 적이 있다. 그 때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개인회생이 끝난 후에도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제 집에 큰 돈을 보낼 필요는 없으니, 내 미래를 위한 돈을 마련해야 했다. 적어도 서비스업계에서, 파리바게트와 다이소 경력은 안 통하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열아홉부터 최근까지 파리바게트 1년 반, 다이소 2년 반, 아트박스 1년, 세븐일레븐 5개월, 다 합치면 서비스업에서만 5년 넘게 일했다.
이것 외에도 세무법인에서 마케팅 계약직 사원으로 5개월 일했고, 친구 사업을 1년 도왔으니, 나름 알찬 20대를 보냈다고 자부한다. 비록 책과 게임을 사는 데에 돈을 쓰느라 통장은 텅 비었고, 아직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마냥 놀지는 않았다.
모두가 잘 알듯, 서비스업은 사람을 상대한다. 자연히 별의 별 인간을 만날 수 밖에 없다. 내 마음이 여유로울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쁜 사람을 만나면 며칠 동안 괴로워했다.
나는 괴로운 일이 생기면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면서 문제를 분석했다. 상대가 왜 그랬는지, 내가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사회적인 원인은 없는지 한참 고민했다. 심리상담가들은 이렇게 이성적인 분석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버릇을 '주지화(intellectualization)' 방어기제라고 부르는 듯하다.
이후 모든 글은 그 주지화 방어기제가 남긴 것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력.
2012년 11월 - 14년 7월, 파리바게트 아르바이트
2014년 7월 - 15년 7월, 다이소 부천역점 파트사원
2016년 6월 - 16년 8월, 다이소 안양역점 파트사원
2016년 9월 - 17년 2월, 군복무 (공황장애로 현역부적합심사 후 전역)
2017년 3월 - 18년 4월, 다이소 안양역점 파트사원
2018년 4월 - 19년 1월, 다이소 호계점 파트사원
2020년 12월 - 21년 5월, 와캠퍼스 마케팅사원
2021년 5월 - 22년 5월, 아트박스 영등포타임스퀘어점 사원
2022년 9월 - 11월, 더칼럼니스트 청년칼럼니스트
2022년 11월 - 24년 1월, 더서울라이트디스패치 대표에디터
2024년 5월 - 9월, 세븐일레븐 안양석수점 계약직 사원
2024년 9월 - , 더칼럼니스트 청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