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2024년 12월 29일, 서울시 정부가 유람선 운영사인 현대한강레저에 강한 행정조치를 내렸다. 그 날 현대한강레저가 한강 한복판에서 폭죽 축제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 조치로 현대한강레저와 서울시가 함께 추진하던 사업이 모두 중단되었고, 여기에 더해 현대한강레저는 6개월 동안 서울시 경계 안에서 유람선을 띄울 수 없게 되었다.
서울시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같은 날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비행기가 폭발했다. 그 사고 탓에 승객 175명과 승무원 4명이 사망했다. 정부는 곧바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서울시는 관행에 따라 현대한강레저에 미리 행사를 취소할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현대한강레저는 폭죽 축제를 강행했다. 국가애도기간에 큰 잔치를 벌인 것이다.
이 일을 두고 논쟁이 일어났다. 한 쪽은 현대한강레저의 무신경함을 비난했지만, 다른 한 쪽은 서울시가 충분한 근거 없이 자유를 침해했다며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애도기간은 강제력이 강한 제도가 아니다. 국가애도기간에 집에서 생일을 축하한다고 해서 과태료를 내거나 징역을 살지는 않는다. 정부는 일반 시민에게 슬픔을 강제할 수 없고, 실제로 강제하지 않는다. 그저 공공기관이 공동체의 비극을 애도하는 뜻으로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할 뿐이다. 그마저도 법에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 국가애도기간은 말 그대로 모호한 '관행'에 가까운 셈이다.
서울시가 월권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한강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고, 서울시는 관행을 근거로 공공장소에서 열리는 행사를 취소할 권한이 있으니까. 다만 국가애도기간에 대한 구체적인 법조문이나 행동 지침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서울시가 마땅한 이유 없이 일반 시민의 자유를 침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오세훈 시장은 같은 보수에게도 비판받아야 했다.
과연 서울시는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규제한 것일까. 서울시 정부가 자유주의 사회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울시는 자유를 정당하게 규제한 것일 수 있다. 심지어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유를 전혀 규제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자유는 유일한 가치가 아니다
자유에는 수백 가지 의미가 있지만, 국가애도기간 논란에서 다뤄지는 자유는 대체로 개인이 타인이나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으면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리킨다. 그런 기회를 정치철학에서는 '소극적인 자유'라고 부른다.
흔히 국가가 소극적인 자유를 침해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퍼뜨려 놓은 왜곡된 통념이다. 하지만 실제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국가가 소극적인 자유를 정당하게 침해할 수 있는 단서를 곳곳에 주렁주렁 달아놨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사야 벌린이다. 이사야 벌린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로 꼽힌다. '소극적인 자유'라는 말이 퍼지게 된 계기가 바로 이사야 벌린의 '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논문이었다. 그 논문에서, 이사야 벌린은 사회나 타인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할 자유에 소극적인 자유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른 사람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 그만큼 개인은 소극적으로 자유롭지 않다.
이사야 벌린은 소극적인 자유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극적인 자유가 무제한일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오히려 벌린은 심각한 불평등과 사회에 만연한 비참함을 방지하기 위해 자유를 상당부분 희생할 뜻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평등이나 공공이익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이 벌린을 포함한 고전적인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다만 벌린은 용어를 정리하려 했다. 자유주의자도 과도한 불평등과 비참에 맞서기 위해 자유를 규제할 수 있다. 다만 그런 규제가 자유를 증진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자유를 위해 자유를 규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평등이나 도덕을 근거로 소극적인 자유를 강제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강제는 강제다. 벌린이 이야기한 것은 단지 그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간기업이 국가애도기간에 한강처럼 개인 소유가 아닌 장소에서 행사를 진행하려 할 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그 행사를 정당하게 규제할 수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사회를 통합하고 비참함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필요하다. 노리나 허츠가 이야기한 것처럼, 정부가 비극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소외감은 내란에 동조하는 일부 노인들 같은 사회적 갈등을 키울 것이다.
때로는 사회를 통합하고 사회적 소외감을 줄이는 일이 개인의 자유보다 중요할 수 있고, 국가애도기간은 개인의 자유를 일부 규제하면서 사회 통합을 지탱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그래서 거의 모든 국가가 국가애도기간을 지정하고 있다. 영국이나 미국 같은 자유주의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개인 소유물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까지 정부가 막아서는 안 되지만, 한강 같은 공공장소에서 진행하는 것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부도덕할 자유는 없다
다른 자유주의자는 슬픔에 동조하지 않을 자유가 없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인물이 로크다. 로크는 철저한 기독교인이었고, 왕이든 자유든 자연법 아래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로크는 개인에게 도덕적으로 행동할 자유만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동성애가 부도덕한 일이라면, 개인에게는 동성을 사랑할 자유가 없다. 동성애가 부도덕한 일이라면, 로크는 국가가 동성애를 탄압한다고 해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없는 자유를 탄압할 수는 없으니까.
존 로크가 살아 있었다면, 서울시가 자유를 전혀 침해하지 않았다고 논평했을지도 모른다. 사회지도층이 사회적 비극에 신경 쓰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미덕으로 통했다. 그래서 유럽의 왕과 귀족은 꾸준히 구휼 활동을 벌였고, 조선의 왕과 사대부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반찬과 술을 줄여서 검소함을 실천했다. 근대화가 진행된 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고위관료나 연예인, 기업인에게 옛 지도층의 미덕을 기대한다.
로크식 도덕주의적인 자유관과 지도층의 미덕을 잣대로 삼는다면, 현대한강레저는 국가애도기간에 한강에서 행사를 열 자유가 없고, 따라서 서울시는 민간기업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이사야 벌린처럼 엄연히 침해는 침해라고 이야기하는 자유주의자가 많겠지만, 로크와 유사한 자유관을 이어받은 자유주의자가 현대에도 분명 있다. 흔히 완전주의적 자유주의자라고 불리는 조셉 라즈가 대표적이다.
자유 한 마디로 논란을 끝낼 수는 없다
국가애도기간이라는 모호한 제도는 자유주의 질서와 꼭 충돌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란 자유와 여러 가치의 균형을 고려하는 생각인 만큼, 서울시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국가애도기간은 많은 국가가 따르는 보편적인 관행이고, 공공이익과 무관하게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제도를 폐지하기를 바라는 쪽은 자유 외에 더 많은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선포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은 문제인데, 이 부분은 모호한 채로 둘 수 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서 정부는 적군이 우리 국민 한 명을 죽였어도 선전포고를 해야 할 수 있고, 우리 국민 백 명을 죽였어도 참고 넘어가야 할 수 있다. 만약 법으로 적군이 우리 국민 몇 명 이상을 죽일 경우 반드시 선전포고를 감행하게 한다면, 우리나라가 무사할 수 있을까. 이러첨 때때로 정부는 수치로 드러나는 명확한 기준이 아니라 정세나 사회적 분위기 같은 모호한 잣대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모든 문제에 수치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회적 참사도 마찬가지다. 대체 몇 명이 죽어야 사회적 참사인지 규정할 방법은 없다. 다만 흐릿한 여론이 어떻게 여기는가를 잣대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애도기간 선포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일관되지 않다고 해서 꼭 잘못된 것은 아니다. 때로 모호함은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일 수 있고, 그런 문제 앞에서는 관행이나 다수결, 사회적 타협이 기준일 수 밖에 없다.
국가애도기간을 자유 한 마디로 끝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그 사람은 성실한 자유주의자가 아닐 것이다. 자유주의란 자유'도' 소중하다는 생각이지, 자유'만' 소중하다는 생각이 아니다. 마치 자유 그 자체가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유주의 전통에서 어긋난다. 다른 가치와의 균형을 외면하고 자유에 대한 간섭을 모조리 죄악으로 본다면, 결국 모든 자유를 잃게 될 것이다.
보수의 기대와 다르게, 자유는 모든 갈등을 한방에 끝낼 수 있는 만능 단어가 아니다.
참고자료
참사날 예약된 불꽃쇼 했다고…서울시 "6개월 유람선 운항 금지", 중앙일보.
이사야 벌린,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박동천 옮김, 아카넷, 2019.
애덤 스위프트, 정치의 생각, 김비환 옮김, 개마고원, 2011.
폴 켈리, 로크의 통치론 입문, 김성호 옮김, 서광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