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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로부터 지켜야 하는 것

최병현의 '프로텍티즘'을 읽고

by 이완

한 때 보수주의자들도 치열하게 논쟁했다. 저울의 양쪽에 자유시장과 복지국가를 올려놓고, 어디에 조금 더 무게를 실을지에 대해 오랜시간 다퉜다. 그런 모습을 누군가는 분열이라고 여겼지만, 정작 보수가 가장 강했던 시기는 내부 논쟁이 매우 치열하던 시기였다. 국민의힘과 다르게,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를 장악하고 있었다.

박효종 교수 : "지금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은 아버지와 아들이 시장에서 당나귀를 사서 끌고 가다가 사람들 말만 듣고 당나귀를 짊어지고 갔다는 우화에 비유할 수 있다. 보수의 핵심인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철저한 고민이 없다."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 : "한달에 50만원 기초생활수급 받는 노인들이 10만~15만원 더 벌기 위해 폐지수집에 나서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 자유가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 2011년 '보수의 위기' 토론회에서

하지만 보수 볼셰비키(다수파)는 복지국가 노선의 성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유로운 시장 경쟁의 힘을 강조했으면서, 주류 보수는 경쟁 상대를 절멸시키는 데 전념했다. 그 결과 논쟁의 불길은 노선에서 계파로 옮겨가며 기세를 잃었고, 얼마 안 가 보수는 석탄 없는 증기기관차처럼 동력를 잃었다. 독점이 도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스스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물론 좋은 의미의 불쏘시개는 종종 나타났다. 위공 박세일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유산을 남겼다. 그 핵심은 서구적인 자유주의를 기본 가치로 삼되, 동양적인 공동체주의로 규제하자는 것이었다. 유승민 의원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의 운을 띄웠다. 자유와 공동체를 모두 지키려면, 정치 권력 뿐만 아니라 경제 권력도 견제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김종인 위원장이 소개한 공공선 자본주의도 잠깐 주목받았다.

하지만 어느 불쏘시개도 상대를 완전히 밀어내려는 계파 갈등의 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제 국민의힘은 '시장인가 복지인가'가 아니라 '친윤인가 반윤인가'를 두고 다툴 뿐이다. 서점가에서도 진보적 가치를 다루는 책들이 꾸준히 판매량 상위권을 채우고 있는데 비해, 보수적 가치를 다루는 책은 성적이 초라하다. 논쟁 수준이나 지지율을 보면, 지금 국민의힘은 침몰 직후의 새누리당과 너무 닮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논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몇몇 지사(志士)가 스스로 불쏘시개를 자처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최병현 보좌관이다. 올해 초, 최병현 보좌관은 '프로텍티즘'을 출간했다. 보수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기 위해서였다. 흔히 프로텍티즘은 보호무역주의라는 의미로 통하지만, 최병현 보조관은 '보호'에 중점을 두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핵심은 "다수결 민주주의의 폭력"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을 설정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최병현 보좌관은 최근 정치 상황에 주목한다. 근 몇 년 동안, 총선에서 다수결로 선택받은 민주당과 대선에서 다수결로 선택받은 윤석열 정부는 무익한 싸움을 반복했다. 각자가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며 상대를 몰아붙였다. 그러다가 먼저 인내심이 떨어진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비상 계엄이라는 최악의 수를 골랐고, 나라의 경제와 품격은 큰 상처를 입었다. 최병현 보좌관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다수결을 앞세워서 상대를 무리하게 절멸시키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여당과 야당이 바뀔 때마다 이러한 행태는 반복되어 왔다. 다수를 점한 세력은 ‘정의’를 내세워 상대를 몰아붙였고, 소수는 ‘정치 보복’이라며 반발했다. 권력의 위치가 뒤바뀌면 역할만 바뀌었을 뿐, 본질적인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 최병현

다수결주의는 승자독식 구조를 초래한다. 다수결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다수파는 하나의 정답을 정해서 나머지를 오답으로 내몰아버릴 수 있게 된다. 43%를 득표한 나치당이 20%와 10%를 얻은 다른 정당을 각개격파한 것처럼, 단순한 다수결에 지나친 힘이 실리면 소수의 의견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만장일치는 불가능한 법, 기존 다수 중에서 새로운 소수가 나타날 수 밖에 없고, 그 소수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모두의 기본권이 망가진다.

이런 다수결의 폭정으로부터 정치적 견제 장치와 소중한 권리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병현 보좌관의 제안은 다수결의 힘을 빼는 것이다.

"프로텍티즘의 첫 번째 핵심 원리는 절대적 보호영역의 설정이다. 이는 어떠한 정치적 결정, 심지어 헌법 개정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독일 기본법의 ‘영구조항’이 그 모델이 될 수 있다."
- 최병현

여기서 프로텍티즘이 절대적으로 지키려는 영역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자유
- 양심과 신념의 자유
-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
- 학문과 예술의 자유
- 재산권의 핵심 내용

자연발생적 공동체의 자율성
- 가족제도의 고유성
- 종교단체의 자치권
- 교육기관의 자율성
- 지역공동체의 자치권

미래 세대의 기본권
- 환경권
- 재정건전성에 대한 권리
- 연금제도 지속 가능성
- 교육기회의 평등

생태계의 지속가능성
- 기후변화 대응
- 생물다양성 보전
- 자연자원의 보호
- 환경정의의 실현

다수파가 쉽게 손댈 수 없는 영역을 만들자는 제안은 유용할지 모른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기도 하니까. 해외에서도 민주주의의 영역 자체를 다소 줄이는 유교식 능력주의나 제한된 지식인 통치(Limited Epistocracy)도 논의되는 중이니, 최병현 보좌관의 제안은 지적 맥락이 없는 외로운 주장이 아니다.

하지만 갓 나온 제안이라 그런지 빈공간이 많다. 우선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목록 치고는 다퉈야 할 지점이 너무 많다.

프로텍티즘은 양심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영역에 포함하고 있데, 그런데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책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지만, 언뜻보면 양심에 따라 병역이나 다른 사회적 의무를 거부할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양심의 자유가 사회적 의무보다 꼭 앞서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존 스튜어트 밀이 이야기한 것처럼, 조건에 따라서 사회는 정당하게 좋은 행동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때 B가 자녀를 양육하기 힘들다면, 사회는 A에게 양육비 지급을 명령할 수 있다.

"타인들의 편익을 위해 그에게 많은 긍정적인 행동들을 강제로 수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다.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것, 공동 방위에서 혹은 그를 보호해 주는 사회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다른 공동 사업에서 공평한 몫을 하는 것, 그리고 동료의 생명을 구해 주거나 무방비의 약자를 학대에서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과 같이 어떤 개인적 선행을 수행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정부는 양심적인 평화주의자도 징집할 수 있어야 하고, 양심적인 무정부주의자에게도 과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양심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호한다는 말은 사회적 의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절대적으로 보호하지 않거나 사회적 의무를 붕괴시키거나,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다. 이는 절대적 보호 목록에 나온 다른 권리들도 마찬가지다.

종교단체의 자치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한다는 것도 무리한 일이다. 최병현 보좌관은 미국의 아미시 공동체를 생각하며 종교단체의 자치권을 목록에 추가했는지도 모르지만, 이런 공존은 어디까지나 기독교 문화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 만약 샤리아 구역을 원하는 종교단체가 있다면, 미국도 선뜻 자치권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전광훈교와 신천지교 같은 위험한 종교 단체 탓에 피해를 입는 사람이 많다. 그런 종교단체를 규제할 수 없다면, 더 많은 자유가 신앙의 이름으로 침해될 수 있다. 비자유주의적인 종교가 설 자리는 없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을 미래 세대의 권리로 규정한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유럽연합은 꽤 오랫동안 재정 건전성을 수호했지만, 이는 유럽연합이 적극적인 산업정책과 인프라 개발에 예산을 지출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그래서 미중 무역 갈등 이후로는 유럽연합조차 재정 건전성 원칙을 깨고 대대적인 투자를 시도하고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정부 부채는 가계 부채와 다르다. 미래 세대가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빚이 아니다. 유럽이 보여준 것처럼, 재정 건전성을 절대적 보호 영역에 둔다면 미래 세대가 경쟁력을 잃을 뿐이다.

프로텍티즘은 아직 날것이다. 공동체 자유주의나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처럼 보수의 대안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다수결에 과도한 권위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프로텍티즘의 문제 의식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공감대를 토대 삼아서 보수의 진로를 바꾸는 일은 앞으로 프로텍티스트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영역이다.

참고자료
“이명박 정부는 보수 표방하면서 자유·시장 가치 못 지켜”, 경향신문, 2011.08.22
박세일, 공동체자유주의, 한반도선진화재단, 2015.
권기돈 등, 보수의 재구성, 메디치미디어, 2019.
최병현, 프로텍티즘, 더레드캠프, 2025.
Anne Jeffrey, Limited Epistocracy and Political Inclus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Episteme 15 (4), 2017.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권기돈 옮김, 서울: 펭귄클래식,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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