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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 의원 논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우리는 권력을 잘못 설계했다

by 이완

강선우 의원 본인은 물론, 강선우 의원을 옹호하는 사람조차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강선우 의원이 보좌관에게 집안일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옹호자는 그 사실을 부정하기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개인 사정을 강조한다.


'강선우 의원은 발달장애 아이를 기르면서도 공적인 일에 헌신해 온 어머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하는 수 없이 보좌관에게 의지해야 했다.' 이것이 주된 변론으로 보인다.


이런 변론은 국회의원과 보좌관 사이의 권력 격차를 외면한다.


권력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타인을 통제하는 능력, 타인의 행동이나 지위, 보상 등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권력 차이는 어디에나 있다. 상급자와 하급자 관계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사이에도 있다.


상대의 기분이 어떤지 상관 없이 상대를 미소짓게 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권력이다.


"당신의 권력은 다른 사람들이 가치있는 보상을 얻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특히 당신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런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뿐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보다 당신에게 큰 권력이 주어진다. 당신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비위를 맞출 동기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당신에게는 통제력이 생긴다."

- 데버라 그룬펠드, 수평적 권력, 김효정 역, 센시오, 2023.


일반적으로 국회의원과 보좌관은 권력 격차가 뚜렷한 관계다. 국회의원은 별 다른 제약 없이 보좌관을 채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다. 그래서 보좌관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국회의원의 통제력에 종속된다.


그런 위계관계에서는 부탁과 명령의 경계가 흐릿할 수 밖에 없다. 엄격한 위계관계에서 부탁은 사실상 명령이다.


물론 보좌관이 국회의원과 사적으로 동등한 동지 관계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서로를 상호적으로 아끼는 관계라면,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사적인 일을 부탁할 수 있다.


서로 대등하고 공정하게 협력하는 관계에 있을 때, 사람은 자신의 보상이나 시간을 선뜻 내어줄 수 있다. 그런 관계에서는 다소 희생이 필요한 일도 '서로에게' 부탁할 수 있다.


하지만 강선우 의원은 보좌관들과 그런 관계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27명이든 46명이든, 강선우 의원은 필요할 때마다 보좌관을 교체해 왔다. 보좌관들을 동업자로 대우한 것이 아니라, 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하급자로 여긴 것이다.


동등하게 대우한 보좌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는 강선우 의원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람을 차별했다는 이야기 밖에 안 된다.


따라서 강선우 의원은 보좌관에게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일을 명령한 것이다. 이를 갑질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옹호자는 강선우 의원이 발달장애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며 살았다는 점에서 도덕성을 발견하지만, 이는 오히려 강선우 의원이 문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지지해 줄 뿐이다.


공감과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한 사람에게 깊게 공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혀 공감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아이를 끔찍하게 아끼는 부모는 다른 사람에게 가혹해진다. 내 아이의 잘못은 무한정 감싸면서 타인의 정당한 행동에는 비난을 쏟는다.


'괴물 부모' 문제는 어제 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진영 논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녀에 대한 사랑을 부각시키는 것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다. 갑질을 저지르기 쉬운 사람이라는 점만 보여줄 뿐이다.


다만 이번 사건을 두고 강선우 의원만 비난할 수는 없다. 인격 차이가 아니라 환경 차이도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여러번 확인했다.


권력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흔히 사람이 권력을 잘못 행사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권력이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 사람이 권력을 부패시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사람을 부패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권력이 잘못 사용되거나 남용되는 게 책임자가 '악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 때도 있다. (...) 더 나쁜 상황이나 시스템에 놓여 있다면, 당신은 규칙을 어기거나 타인을 해치면서까지 나쁘게 행동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게 될 확률이 높다."

- 브라이언 클라스, 권력의 심리학, 서종민 역, 웅진지식하우스, 2022.


국회의원과 보좌관의 관계는 법으로 설계된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일방적인 권력을 부여하고 노동권 사각지대를 초래한 것은 제도다. 주변에 온통 맛있는 것이 즐비한데 식욕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흔히 문제가 터지면 사람은 사람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 시스템이나 조건이 더 중요할 때가 있는데도, 일단 사람의 인격이나 지능을 문제 삼는다. 이런 편향을 심리학자들은 '근본적 귀인 오류'라고 부른다.


권력이 반드시 부패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고기라도 통조림에 넣으면 쉽게 부패하지 않는 것처럼, 제도적으로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권력도 부패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국회의원과 보좌관의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권력을 남용하기 너무 쉬운 환경이다. 아마 갑질 사례를 수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선우 의원을 장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주된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환경을 피하거나 바꿀 책임은 개인에게 있을 수 있고, 가치관과 능력은 좀 더 검증되어야 한다.


특히 강선우 의원은 의혹이 드러났을 때 거짓말을 했다. 여기서 장관 자격을 잃었다.


다만, 우리는 권력을 잘못 설계해 왔고, 그 증상으로 갑질이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단 개인의 품성부터 탓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이지도 않고, 건설적이지도 않다.


비난만 잔뜩 쏟아내고 같은 일을 예방하지 않으면, 거기서부터는 모든 정치인이 방조죄를 저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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