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우파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
“이런 한심한 사람들하고 내가 뭘 하겠나.”
2021년 1월 12일에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한 말이다. 여기서 ‘한심한 사람들’이란 국민의힘 정치인을 가리킨다. 2021년에는 김종인 위원장이 국민의힘을 이끌고 있었다. 김종인 위원장이 외부인이면서 중도 노선을 밀어붙였던 탓에, 일부 보수 정치인은 김종인 위원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라디오 인터뷰 전에도 작은 갈등이 있었다. 그 해 1월 7일, 김종인 위원장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에게 ‘마르코 루비오의 공공선 자본주의와 좋은 일자리’라는 보고서를 돌렸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상원의원이자 가톨 신자인 마르코 루비오가 2019년에 한 싱크탱크에 올린 기고문을 번역한 것이었다.
보고서의 핵심은 이렇다. ‘노동을 다시 존엄하게!’
루비오 의원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는 존엄함을 잃었다. 과거와 다르게, 더 이상 한 집안의 가장이자 지역 공동체의 번듯한 구성원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그 탓에 “결혼, 출산, 기대 수명의 감소, 그리고 약물 의존, 자살 및 기타 절망사의 증가”를 겪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루비오 의원은 기업이 중요한 사회적 의무를 잊었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윤 추구는 기업의 권리다. 하지만 기업이 권리만 갖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업은 이윤을 다시 투자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지난 반백 년 동안 미국 기업은 끝없이 이윤을 축적할 뿐이었다.
“우리가 오직 기업이 이윤을 낼 권리에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고, 미국에 재투자할 기업의 의무를 인식하기를 멈췄을 때, 대기업들은 주주, 경영자, 은행이 자신들의 청구권을 주장하기 위한 금융 수단에 불과하게 되었다. 주주에게 돈을 돌려줄 권리가 다른 모든 권리 위의 권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노동자와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투자할 의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경제 수치가 그 이야기를 말해준다. 지난 40년 동안, 기업 이윤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에서 거의 30%로 증가했다. 주주에게 보내진 그 이윤의 비중은 300% 증가한 반면, 회사의 노동자와 미래에 대한 그 이윤의 재투자는 20% 감소했다.”
- 마르코 루비오
노동자는 일을 통해 존엄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 기업은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 금융에 손을 뻗어서 이윤 축적에만 몰두했다. 이는 가톨릭 교회가 오랫동안 부도덕하다고 지적해 온 일이었다.
“이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교황 베네딕토가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에서 실제 생산과 분리된 "대체로 투기적인" 금융 흐름의 지배라고 묘사한 경제적 재편의 희생자들이다.”
가톨릭 신자답게, 루비오 의원은 보고서 곳곳에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인용한다. 가톨릭 교회는 오랫동안 유럽 사회의 큰 어른 역할을 맡아 왔다. 19세기에는 유럽 곳곳이 산업화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노동자의 빈곤과 실업 같은 ‘노동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유혈 폭동과 혁명까지 일어났다. 모두가 처음 겪는 사태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당시는 큰 어른이 사태를 진정시켜야 할 시점이었다.
그래서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3세는 역사에 오래 남을 회칙, 일명 ‘새로운 사태’를 반포했다. 새로운 사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계급 전쟁에 돌입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다. 서로에게 의존하는 관계인 만큼,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노동자는 성실하게 일할 의무가 있고, 자본가는 노동자를 궁핍하게 만들지 않으며 한 사람의 이웃으로 대우할 의무가 있다. 이를 어기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이다.
"자본가와 고용주가 대체로 명심해야 할 원칙은 자신의 이윤 추구를 위해 곤궁하고 불쌍한 사람을 억압하고 이웃의 비참함을 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법과 실정법이 모두 금지한다는 사실이다."
- 교황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은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실제로 레오 13세의 회칙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후 서독의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는 열정적인 반공주의자이자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다. 아데나워 총리는 정부가 경제를 과하게 통제하지 못하게 막았지만, 노동자의 협상력을 키우는 정책은 적극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독일 특유의 노동자 경영참여권이었다. 이는 다른 것보다도 가톨릭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었다.
독일뿐만이 아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가톨릭 신자가 많은 나라에서는 기업인이 노동자를 가족의 일원처럼 보호하거나 노동자가 강한 협상력을 보장받았다. 유럽이 오랫동안 노사 협력의 역사를 쌓을 수 있었던 데는 가톨릭 교회의 역할이 상당했던 셈이다.
루비오 의원의 공공선 자본주의도 가톨릭의 보수적인 가르침에 기반하고 있다. 루비오 의원은 여러 칼럼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동시에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가 존엄함을 잃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미국 전반이 두 계급으로 분열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공공선을 회복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동선 자본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할 의무를 다하고 그들의 노동의 혜택을 누리며, 기업들이 이윤을 낼 권리를 누리고 그 이윤의 충분한 양을 재투자하여 미국인들을 위한 존엄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자유 기업 체제이다.”
- 마르코 루비오
루비오 보고서는 보수적이다. 독일의 기독교민주주의보다 좀 더 보수적이다. 하지만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필요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노동자 역시 존엄함을 잃은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임금 체불과 산업 재해가 일상인 곳이다. 그 탓에 고용동향 통계에 따르면 취업을 준비하지 않는 청년이 70만 명에 달한다. 상황이 이런 만큼, 일하는 사람이 적절하게 대우받도록 하는 정책이 절실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당이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중도 노선을 채택해야 한다고 진단했고, 그런 이유에서 루비오 보고서를 돌렸다. 그래서, 이 보고서를 받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김종인 위원장이 당을 좌경화하려 한다며 걱정했다. 노동자의 존엄이라는 공공선을 우파의 가치로 두자는 주장조차,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좌파 사상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서구 정치사상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
“공공선 자본주의를 나눠줬더니 당 의원들은 '당을 좌클릭하려고 그런 것 돌렸냐'는 얘기를 하고있다고 한다.”
- 김종인 위원장
국민의힘 의원들은 왜 공공선 자본주의를 좌파적이라고 여겼을까. 분명 김종인 위원장에 대한 불신 탓도 있었을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당 강령에 기본소득을 포함시킬 정도로 중도화를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정치인 중에서 논란 있는 사람을 단호하게 컷오프시켰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어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의힘과 당을 둘러썬 우파 스피커들이 자유방임주의를 맹목적으로 그리고 선택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김종인 "이 한심한 사람들과 뭘 하겠나…선거까지만 한다", 한국경제, 2021.01.12
김종인은 왜 루비오 보고서를 돌렸나, 동아일보, 2021.01.16
Senator Marco Rubio, Common Good Capitalism and the Dignity of Work, Public Discourse, 2019.
조귀동, [조귀동 칼럼] ‘公共善 자본주의’가 한국 보수에게 주는 화두, 피렌체의 식탁, 2021.01.27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 1891.
문수현, 독일현대정치사, 역사비평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