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정치적 실패
청년 남성 상당수는 기성 진보주의자, 특히 민주당 정치인을 미워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청년 남성 과반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대신 계엄에 적극 반대하지 않은 김문수 후보와 노골적인 차별을 요구하는 이준석 후보를 지지했다. 이전 선거에서도 청년 남성은 보수 후보의 주요 지지층이었다.
뿐만 아니라, 청년 남성은 대체로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차별받지 않는다고 여긴다. 남녀 격차 외에도 여러 영역에서 능력에 따른 차별을 적극 지지하거나,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많은 청년 남성이 빈곤의 원인으로 사회구조보다 개인의 노력을 지목하는 것도 어느정도 사실로 보인다. 정말 청년 남성은 극우 파시스트인 걸까.
한겨례 '우리 안의 극우' 시리즈에서, 박권일 작가는 그렇다고 못박는다. 이유는 불평등과 이준석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진보 성향의 인플루언서 중에는 이런 일반화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청년의 극우화' 이야기에는 위험한 대전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진보 정치인들이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믿음이다. '진보는 옳은 경로를 통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청년 남성이 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렇게 믿는다면, 모든 책임을 청년 남성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진보 정치인은 청년 남성에게 신뢰를 잃을 만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강하게 청년 남성을 밀쳤고, 군소 진보정당도 청년 남성을 배제하는 데 보잘것없는 힘을 보탰다. 우리나라 진보주의는 평등을 위해서라며 불합리함을 요구해 왔고, 그 불합리함의 피해자 중에는 청년 남성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불합리함이 법 앞의 불평등이다. 여성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면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수 있다. 성폭행이 은밀한 곳에서 주로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 진보주의자는 매번 여성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고, 여성에게 유리하게 판단할 것을 요구했다. '피해자의 눈물이 곧 증거'라는 공포스러운 슬로건을, 진보주의자는 아무런 비판 없이 외쳤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겠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무고하게 피해를 보는 남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몇몇 남성 연예인은 헛된 호소 때문에 사회적 지위를 잃었고, 전라도의 한 교사는 죄가 없다는 점이 드러났는데도 억울함을 풀지 못해서 자살로 내몰렸다.
남녀 평등을 위한 일이 법 앞의 평등을 무너뜨렸다. 그런 와중에 문재인 정부의 어느 기관장은 남성이 시민 의식을 발휘해서 잠재적 가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한다고 가르쳤다. 심지어 진보적 지식인은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사회학적 근거는 없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남성은 절망으로 내몰려도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공포를 진보주의자 스스로가 조장한 셈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청년에게 트라우마와 죽음을 안겨준 병역 문제, 연애하고 결혼할 때 요구되는 불균형한 책임 문제 등, 남성이라서 겪는 문제들이 분명 있었다. 학자들이 연구하지 않아서 학술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 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충분히 높았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는 그 모든 불만을 외면했다. 자신을 배제하는 정치 세력에게 굳이 표를 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우리나라 청년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시장만능주의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고, 사회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진보적 사상에 편견을 가진 경우도 많다. 제대로 된 능력주의가 아닌, 나무위키에 나올 법한 통속적인 능력주의를 지지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런데, 다른 세대는 얼마나 다를까.
청년 남성이 진보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진보주의는 논리적으로 결함이 많다. 윤리적으로 논쟁거리가 많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는 단 한 번도 이런 점을 반성하지 않았다. 그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먼저 청년 남성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그들을 배제한 것은 진보 쪽이었다. 이걸 제외하고 이야기하는 극우화 논쟁은 무의미하다. 칼럼 '이대남 혐오를 멈춰라'에서 이범 평론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청년 남성 상당수는 극우화된 것이 아니라 그저 기성 진보를 미워할 뿐이다. 자신을 미워한다고 해서 극우라고 욕하는 것은 그닥 보기 좋지 않다.
"청년들이 극우의 입구로 더 많이 몰려가는 이유가 있다. 진보 세력이 권력을 잡아 정권이 바뀌어도 큰 변화가 없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해놓고 자기 자녀들만 챙긴 중산층 진보 집단도 탐욕스러운 보수 집단도 자신들의 잇속을 차린 엘리트였다."
- 김현수, 극우 청년의 심리적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