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좁은 시야

인간의 얼굴을 한 진보주의 4화

by 이완

심리학자 폴 블룸에 따르면, 공감Empathy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황과 감각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이 겪는 일을 마치 내가 겪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런 공감 능력에는 두 가치 측면이 있다. 하나는 인지적 공감이다. 인지적 공감은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추론하는 능력이다. 인지적 공감은 이름이 보여주는 것처럼 감정보다는 이성의 영역이다. 사회 지능이라고도 불린다.


다른 하나는 정서적 공감이다. 정서적 공감은 상대가 느끼는 감각이나 감정을 마치 내가 겪는 일처럼 느끼는 능력이다. 정서적 공감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일어날 수 있는 과정이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오열하면 시청자도 눈시울이 붉어질 수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에게 정서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정서적 공감은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도덕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스미스에 따르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낄 줄 알고 고통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동기를 타고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행동한다. 최근 여러 과학자가 공감의 힘을 부각시키면서, 공감은 도덕 문제의 해법으로 통하게 되었다.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면, 마치 내 자신 또는 내 가족이 다친 것처럼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서적 공감은 그 자체로 증명되지 않지만 도덕적 판단을 이끌어내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전제처럼 활용된다.


'차가운 이성'보다 '따뜻한 관심'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진보주의자가 주로 꺼내드는 공감은 정서적 공감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서적 공감이 도덕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둔탁한 도구라는 점이다.


우선 정서적 공감은 매우 편향적이다. 정서적 공감은 항상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집중한다. 이 사람에게 공감하는 사람은 저 사람에게 공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받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일하려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공감하는 사람은 임금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자국민 노동자에게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공감할 수 없고, 따라서 공감은 공정할 수 없다.


정서적 공감은 분노처럼 판단력을 흐릴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의 고통에 과하게 몰입하면, 다른 사람의 처지나 공정한 대우, 비용 - 편익 계산 따위는 모조리 무시하게 된다. 편의점 사장이 물건을 훔치려는 아이에게 주의를 줬는데 그 아이의 부모가 사장에게 역으로 화를 낸다면, 부모는 자기 아이에게 과하게 공감하는 바람에 편의점 사장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정서적 공감이 마음 속 시야를 가려서 불의를 초래할 수도 있는 셈이다.


"공감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곳을 환히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와도 같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빛을 비추는 면적이 좁다. 이것이 공감이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 공감은 편견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도덕적 판단을 왜곡한다."

- 폴 블룸, 공감의 배신, 이은진 역, 시공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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