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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이상한 말

국경와 안보는 중요하다

by 이완

최근에는 불법체류자를 '미등록 이주민'으로 부르는데, 이는 정치적 올바름이 억지를 부리는 사례 중 하나다. 나라마다 국경 안에 머무는 조건을 법으로 정해놓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그 법을 어기며 머무르고 있다면,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것이다. 동어반복이다.


외국인의 출입국을 관리하는 것은 안보와 주권이 걸린 문제다.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잃으면, 각국 정부는 테러나 물류, 전염병, 인구와 임금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국가안보나 사회권을 지탱하려면, 정부는 누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등록되지 않은 이주'라는 것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 위장전입, 주거침입, 취득을 신고하지 않은 부동산 점유와 미등록 이주는 무엇이 다른 걸까. 이는 트럼프만의 주장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좌파 중에도 국경 통제권을 강조하는 사람은 많다. 모든 좌파 전통이 내셔널리즘이나 국가 주권, 국가 안보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물론 불법체류자 중에는 억울한 사례가 있다. 조국이 무너져서 살기 위해 탈출해야 했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부모가 불법체류자인데 외국에서 아이를 낳은 경우,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불법체류자로 살아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이 불법체류자라는 말을 피하려는 것도 그런 억울한 사람을 나쁜 시선과 소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첫번째 책임 소재는 그 사람이 원래 속한 국가다. 주거침입자의 삶을 집주인이 책임질 수는 없다.


불법체류자를 미등록 이주민으로 바꿔 부른다고 해서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사람의 사고능력을 무시하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금만 생각해 보면 미등록 이주가 얼마나 이상한 말인지 금방 드러나니까.


무분별한 따뜻함은 장기적으로 누구도 구해주지 않는다. 불법체류자의 상처가 사실과 주권을 앞설 수는 없다. 그들의 안타까움이 국경 통제에 실패했을 때 일어나는 폐해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공동체 구성원끼리 결속하려면 필연적으로 외부인과 내부인을 구분하게 된다. 그 구분이 무의미한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게 절제해야 하지만, 구분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국민 정체성은 매우 강한 감정이고, 서로 공통점이 적은 사람들이 국가 단위로 평화롭게 연대하는 사례는 매우 희소하다.


사람은 부족주의자, 내셔널리스트로 태어나지, 평등주의적인 코스모폴리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국경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국경을 여러 번 넘을 여유가 있는 소수 고학력 - 고소득자의 고상한 취향에 가깝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든 외계인 방어를 위해서든 인간 사회들이 서로 의지할 때라 해도, 차이점의 무게감이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세계 사람들이 인류 전체와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가질 것이라는 범세계주의 관념은 하나의 몽상에 불과하다."

- 마크 모펫, 인간 무리


말장난 보다는, 인구와 임금 상황을 봐 가면서 억울한 사례들에 영주권을 허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동시에 또 다른 억울한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양성을 위해 클레오파트라를 흑인 여성으로 묘사한 다큐멘터리가 어떤 반응을 초래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말을 억지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괜한 반발만 부를 뿐이다.


법을 어겨가며 머무르는 사람은 미등록 이주민이 아니라 불법체류자다.


"우리는 함께 나아가는 국가가 아니라, 낯선 사람들로 이루어진 섬이 될 위험에 처했다."

- 키어 스타머 경, 영국 총리, 노동당 당수


출처 : What are British PM Starmer's new policies to curb net migration?,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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