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문제는 소외되고 있다
대통령선거에서 여성이 사라졌다. 여성 후보도 없고, 여성 정책도 없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국 후보가 여성 정책을 공약하기는 했지만, 당선을 노리고 나오지 않았으니 논외다. 대선 후보는 누구보다 여론에 민감하다. 그런데 여성이 사라진 것을 보면, 사회전반에 여성운동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가 자리잡은 것이 아닐까.
이런 백래시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주로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무리하게 성평등을 추진한 탓에 성갈등이 깊어지고 무고하게 죽는 사람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가부장제를 끝내기 위해 부모의 성을 모두 쓸 수 있어야 한다. 남녀 갈등은 계급 갈등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하다. 성매매 뿐만 아니라 만화와 게임 등에서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일을 모두 금지해야 한다. 출산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여성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경찰, 군인, 소방관을 채용할 때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등.’ 모두 합리적이지 않고 과격한 요구였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 래디컬 페미니즘이 적지 않은 사람에게 공포감을 줬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중에도 래디컬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사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래디컬 페미니즘의 준동과 상관 없이, 사회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여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통계에 따르면, 여성 가구주는 남성 가구주보다 빈곤하다. 여성은 남성보다 소득 분위를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40대 후반을 기준으로 여성의 중위소득은 남성의 절반 수준이다. 한쪽에서는 여성이 저소득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세상에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성이 저소득 직장을 주로 선택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여성이 비교적 많은 직장이 제대로 임금을 분배하고 있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남녀 간 소득 격차는 사회적 폐해가 크다. 따라서 그 원인이 무엇이든 공정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일상 속 폭력도 문제다. 여성을 노리는 범죄는 아직 안심할 만큼 통제되지 않고 있다. 어느 조직에서든 여성에게 과하게 추근덕거리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여성에게 외면당하면 폭력으로 보복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남성이 여성만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의 경우 폭행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항상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남성끼리의 폭행은 쌍방인 경우가 많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은 일방인 경우가 많다.
각자도생의 정글은 여성에게 더 가혹한 면이 있다. 여성의 권리는 여성끼리 연대해서 집단으로 폭력에 맞설 때부터 겨우 증진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각자도생하는 곳이다. 소수 부유한 여성을 제외하면, 대다수 여성은 일상 속 불안에 스스로 대처하기 힘들 것이다. 근력, 권력, 경제력 격차는 흩어진 여성을 위협하고 있고, 이는 분명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여성 문제는 대선에서 사라져도 좋을 만큼 가벼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