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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인상, 잠깐 멈춰야 하는 이유

보다 섬세한 대책이 필요하다

by 이완

사실, 가장 공정한 상속세율은 99%다. 엄격하게 공정한 사회라면, 자녀가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재산을 제외하고 나머지 상속재산을 모두 사회가 활용해야 한다. 상속재산은 반박의 여지 없이 큰 해악을 초래하는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소수의 왕족이나 귀족이 경쟁이나 검증 없이 권력을 세습할 수 있었다. 그 탓에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권력을 오래 누릴 수 있었다.


현대에는 신분제도가 폐지되었지만, 대신 상속재산이 계급 특권을 지탱하고 기회 불평등을 초래하는 핵심 요소로 남았다.


물론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은 힘겹게 재산을 마련했을 수 있다. 하지만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은 힘을 들이든 그렇지 않든 큰 재산을 거저 얻게 된다. 상속은 교환도 아니고 기여에 따른 보상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상속재산이란 토지 지대보다 더 확실한 불로소득인 셈이다.


간혹 상속받기 위해 부모에게 능력을 증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왜 모두 불로소득이냐고 묻지만, 이는 '불로소득'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경제나 정치사상에서 말하는 불로소득은 계급이나 독점 등 여러 특권을 통해 얻은 소득과 재산을 모두 가리킨다.


노동자가 독점 기업에서 강력한 노동조합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면, 피땀 흘려서 벌어들인 근로소득에도 불로소득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고작 부모에게 아양떠는 노력 따위가 상속의 정당성을 챙겨줄 수는 없다. 공정한 사회, 큰 권력이 세습되지 않고 사회구성원이 원활하게 경쟁하고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속재산을 방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말 상속세를 99%까지 올려야 할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기여에 따른 분배는 좋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이지만 유일한 기둥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은 욕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 적지 않은 사람이 유산을 남김으로써 상징적인 불멸을 추구한다. 당장의 이윤이 아니라 자신만의 성을 건설하고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욕구가 창조적인 사람을 움직인다.


이런 거창한 동기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누구나 내 자손이 보다 좋은 조건에서 살기를 바랄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넘겨주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그런 사람의 욕구만 존중할 수는 없다.


대다수 사람은 가족주의자, 부족주의자다. 상속세 99%를 실현하려면 사회구성원이 서로를 거의 가족처럼 여겨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서로를 못 죽여서 안달인 곳이다. 당장 상속세를 더 높이면, 분명 중단기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상속재산은 불로소득이자 기본욕구다. 따라서 상속세를 다룰 때는 둘 사이에서 타협이 필요하다.


부동산에는 유산취득세 형식으로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세를 남길 수 있다. 이 때 자택은 제외할 수 있다. 대신 금융자산에는 상속세를 폐지하고,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높은 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다.


또는 부동산 상속세 역시 폐지하고, 대신 상속받은 부동산에 높은 보유세와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속재산이 초래하는 특권을 반드시 상속세라는 방식으로 억제해야 할 이유는 없다. 상속세는 다소 소란스러운 방식이니,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건강한 삶에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골고루 필요한 것처럼, 좋은 사회에도 자유, 공정, 평등 등 여러 가치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어느 한 가지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반드시 탈이 난다. 그런 점에서 상속세 인상은 절대선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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