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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의 숨겨진 역사

사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사회주의와 협력했다

by 이완

스위스 경제학자 레옹 발라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조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영국의 윌리엄 제번스,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와 함께, 경제학에서 노동가치론을 몰아내고 한계 효용 개념을 도입한 주역 중 하나로 통한다. 이 '한계주의'가 고전파와 신고전파를 가르는 핵심 경계다.


신고전파 학자답게, 레옹 발라는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경제를 신봉했다. 이상적인 시장경제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만족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를 수학으로 설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 '일반 균형 모델'이다.


그런데 레옹 발라는 이상적인 시장이 허공에서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발라는 자유 경쟁을 실현하려면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발라의 사회주의는 이런 모습이다. 우선 국가는 토지와 천연자원을 소유하며 경제주체들에게 임대한다. 대신 각종 세금을 폐지한다.


이처럼 발라는 여러 독점을 폐지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완전 경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소 좁은 의미의 사회주의였지만, 아무튼 발라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여겼다. 물론, 노동가치론에 기반한 마르크스주의에는 결코 찬성하지 않았다.


레옹 발라 외에도 여러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다양한 사회주의와 가까웠다.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발라의 뒤를 이어 교수직을 이어받은 사람은 파레토 최적으로 유명한 그 빌프레도 파레토였다. 파레토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가정하는 완전 경쟁과 사회주의적인 완전 계획 경제가 '이론적으로' 같은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파레토는 이상적인 경제 계획부서를 상정하며 자신의 경제학을 다듬었다.


철학에서는 정합론으로 유명한 오토 노이라트 역시 신고전파 경제학이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구현할 수 있는 이론 기반으로 봤다. 1930년대 영국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도 기존 고전파 경제학이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대신 신고전파 경제학을 받아들여서 사회주의 경제 계획을 구상했다.


심지어 소비에트 연방 최고의 경제학자였던 니콜라이 부하린도 신고전파 경제학을 활용해서 정부 계획과 민간 경쟁을 결함하는 신경제정책을 구현했다. 소련 당국과 신고전파 경제학자는 꾸준히 교류하며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스탈린이 집권하기 전까지.


초기 신고전파 경제학은 맹목적으로 자유방임을 지지하지 않았다. 일부 학자는 이상적인 경쟁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수용했고, 일부는 아예 사회주의적인 국유화와 계획경제를 옹호했다. 지금과 다르게, 과거의 경제학은 그렇게 꽉 막힌 학문이 아니었다.


현대 사회주의자는 신고전파 경제학을 만악의 근원으로 여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둘이 반드시 충돌하는 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한 쪽은 자유로운 경쟁을 위해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고, 다른 한 쪽은 사회주의를 위해 자유로운 경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사회주의와 자유경쟁의 갈등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사회주의'는 모순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부 경제학자는 이상적인 미래상으로 제시했다. 어쩌면, 지금도 유용한 대안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조하나 보크만,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홍기빈 역, 글항아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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