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교수의 '극우 청년의 심리적 탄생'을 읽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성적과 등수를 발표했다. 나는 국영수 세 과목으로 2등이었지만, 예체능 과목을 포함하면 4등이었다. 낮은 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튼 주요 과목으로는 2등이었으니까.
나는 집 앞에 있는 공중 전화기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빨리 성적을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1등 한 것도 아니면 뭘 공중 전화까지 쓰니. 들어오기나 해라."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실망감이 컸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날 밤, 방에서 자고 있는데 아빠가 날 깨웠다. 아빠는 효자손을 들고 있었고, 옆에서 엄마는 오열하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린 것은 아니었다. 때릴 대상은 나였다. 아빠는 나를 앉히더니 내 진짜 성적을 물었다. 나는 낮에 공중 전화로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읊었다. 그랬더니 아빠는 내 손바닥을 때렸다.
원인은 엄마였다. 엄마는 낮에 학부모 모임에 참석했다. 거기서 내가 반에서 2등이라고 자랑했다. 그 때 다른 학부모가 반에서 3등까지 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상장을 들고 가지 않았다. 전체 과목으로는 4등이었고, 담임 선생님도 아직 상장을 나눠주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내가 성적을 속였다고 생각했다. 내 거짓말 때문에 학부모 모임에서 창피를 당했고, 그래서 한밤중에 울면서 아빠한테 하소연한 것이었다. 나도 울면서 속인 적 없다고 항변했다. 성적을 있는 그대로 말했고, 상에 대해서도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내 손바닥만 아플 뿐이었다.
새벽 3시가 되도록 결론이 나오지 않자, 아빠는 내일 두고보자고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내일 아침에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내 성적을 알아내라고 했다. 나는 손바닥을 비비며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건지 알 수 없어서 더 답답했다. 그렇게 한참 울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엄마는 서비스업 종사자처럼 꾸민 목소리로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했다. 내가 몇 등인지, 몇 등까지 상을 주는지 물었다. 결론은 뻔했다. 나는 거짓말한 적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어제 시간이 늦어서 상을 나눠주지 않았고, 오늘 아침 방학식 전에 줄 계획이었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고,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저녁에 아빠가 퇴근했다. 나는 아빠한테 사실을 알렸다. 사과는 없었다. 엄마는 내가 성적을 정확히 말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원래도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 때부터 나는 의욕을 잃고 대신 원한, 분노, 복수심을 얻었다. 다 죽고 나도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는 빚만 남기고 죽었다. 나는 아빠가 남긴 빚 때문에 19살부터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온갖 일을 겪었다. 아빠는 마지막까지 내게 짐을 떠넘겼다. 그래서 아빠 장례식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아빠를 찾아가지 않았다. 지금은 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김현수 교수에 따르면, 극우화의 주 경로 중 하나가 어린 시절에 품은 원한과 복수심이라고 한다. 어릴 때 억울한 일을 겪었고, 그래서 마음 속에 분노를 품은 사람들이 그 감정을 이해해 주는 극우 커뮤니티와 만나서 극우화된다는 것이다.
"소외, 좌절, 배제, 도태, 방임, 학대와 같은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은 늘 우익화의 큰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있다. 가정이나 학교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장소에서 겪는 부당함과 억울함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분노를 풀지 못할 때 생기는 원한이다."
- 김현수, 극우 청년의 심리적 탄생
나는 극우화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원한과 상처는 충분했고, 그 속에서 혼자였다. 실제로 20대 초반까지 편협한 극단주의자처럼 생각했다. 폭력적인 혁명도 적극 지지했다. 파리 코뮌이나 러시아 혁명을 보며 희망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인터넷에 서툴렀다. 내향성이 강해서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 가는 것도 꺼리는 편이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책에 의존했다. 나는 강박적으로 책을 읽었다. 주변 어른에게는 이해받을 수 없었고, 인터넷과 대중 문화는 기득권의 지배 수단이라고 믿었으니까. 생각이 자리잡기 전에는, 읽는 책에 따라서 생각도 바뀌었다. 나는 책 때문에 극단주의에 갇혔고, 책 덕분에 극단주의에서 빠져 나왔다. 이런 다양한 조건이 맞물려서 지금의 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유전자 탓에 술에서 쓴 맛을 강하게 느낀다. 그런 사람은 아무래도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어렵다. 소소한 유전적 행운을 누린 셈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극우화를 피한 것도 내 노력 덕분이 아니었다. 정말 여러 요소가 나를 극단주의로부터 건져올렸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주로 진보주의자와 앞세대 사이에서, 청년의 극우화는 이해불가능한 현상으로 통한다. 흔히 젊을수록 진보적이라는데, 요즘 청년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청년 전체가 극우화되고 있다는 진단은 과장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원래 우경화된 사회이고, 극단주의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우 청년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 극우 청년들이 다른 청년들을 가릴 정도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도 사실이고, 다른 청년이 극우화되지 않게 예방해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김현수 교수가 쓴 진단서가 필요한 시기다. 정치는 감정적인 일이고, 감정을 이해해야 원인도 이해할 수 있다. 정치학자 뿐만 아니라 심리학자의 관점도 필요한 셈이다.
다만, 극우화를 질병처럼 보는 것은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쟤들은 아픈 애들'이라는 식으로 청년을 배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극단적 진보주의자는 청년 남성 전반을 사회 악으로 묶어서 비난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질병의 증상으로 규정당하면 더더욱 폐쇄적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상처에 너무 둔감했다. 그 탓에 온갖 사회문제를 스스로 키웠다. 그 상처에 책임이 없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상처받고 소외되어서 극단주의자가 되었다면, 그 책임을 사회 전반이 나눠야 한다. 청년 개개인만 탓할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극단주의에 취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조건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