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일인 줄 알지만, 그럼에도 허탈하다
이재명 정부가 대규모 채무 탕감을 시작한다. 이번 추경 때 1조 원을 들여서 7년 이상 연체된 채무를 줄일 계획이다. 약 100만 명이 정책 대상이라지만, 처분 가능한 재산이 없는 사람만 전액 탕감을 받는다.
지금 상황에서는 필요한 정책일지도 모른다. 불평등한 기회와 과잉 경쟁이 사람들을 부채의 늪으로 밀어넣은 면도 있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억울하다. 내 20대를 부정당한 기분이다.
2011년, 아빠가 빚만 남기고 죽었다. 물론 아빠 명의로 된 빚은 상속을 거부했는데, 문제는 아빠가 엄마 명의로도 대출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아빠가 소득이 없어서, 신용으로 생활비를 충당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경력단절 여성이었다. 가부장적인 아빠 때문에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과 두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당장 충분한 소득을 벌 수 없었으니, 결국 또 신용에 의지해야 했다.
빚이 불어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얼마 안 가서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워 졌다. 때마침, 엄마가 새로 취업한 대형마트에 개인회생 상담비를 지원해 주는 직원 복지제도가 있었다.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2013년부터 개인회생을 시작했다. 개인회생도 만만치 않았다. 5년 동안 변제금을 내야 했다. 빚과 이자를 감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그래도 엄마 혼자서는 무리였다.
동생은 아직 초등학생이었으니, 19살인 내가 일해서 도와야 했다. 그 땐 최저임금이 낮을 때라, 주 40시간 넘게 일해도 월급으로 80만 원을 받았다. 나는 그 중에서 50, 60만 원을 집에 보냈다. 개인회생이 끝날 때까지.
2018년, 엄마가 마지막 변제금을 보냈다. 정말 긴 시간이었다. 나와 엄마는 소소한 해방감을 느꼈다. 내 20대 절반을 아르바이트와 우울감으로 채워야 했지만.
그런데 새 정부가 빚을 탕감해 준다고 하니, 한 편으로는 지지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달갑지 않다. 물론 우리집보다 가혹한 사례가 많겠지만, 그 사실을 알아도 허탈함이 든다. 사람 마음이 참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