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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케이크 선물

새 정부의 한일 외교에 바라는 것

by 이완

2018년 5월 9일 도쿄 총리관저.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났다. 본격적인 회담 전에, 아베 총리가 깜짝 선물을 선보였다. 한글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 축하 드립니다"라고 적힌 케이크였다. 일본인 다운 오모테나시(환대)였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케이크를 권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선을 그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이가 좋지 않아서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꼭 정면에서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일단 나눠받고 먹는 시늉만 할 수도 있었다. '외교'란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사이 좋게 케이크를 나눠먹는 사진조차 남기려 하지 않았다. 이후 한일 관계는 줄곧 최악이었다.

물론, 아베 총리는 우리나라에 밉보인 적이 있다.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위안부 합의를 맺어서, 일본을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다. 사죄와 배상 요구에 지쳤다는 여론에 부응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위안부 합의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빠져 있다는 의견이 강했고, 당시 새누리당에서도 합의가 졸속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전부터, 우리니라 사람에게 아베 총리는 일본 극우의 화신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베 총리의 깜짝 선물을 매몰차게 거절해야 했을까. 한일은 오랫동안 감정 싸움을 벌였다. 일본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우선 서로에 대한 격한 감정부터 가라앉혀야 한다. 적어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어느 쪽이든 양보하며 적절히 타협할 수 있다.

한일관계가 계속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남는다면, 어떤 총리가 집권하더라도 일본은 2015년 위안부 합의보다 나은 것을 제안하기 어려워진다. 일본도 민주국가라, 국민적 감정을 거스를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총리가 내민 손을 그 자리에서 뿌리쳤다. 그것이 일본인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전혀 몰랐을까.

이제 옛 위안부 중에 생존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외교적, 경제적으로 압박할 능력이 없다. 시간은 일본 편인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다른 피침략국에 비해 굉장히 많은 것을 받았다. 독일도 그리스나 아프리카에 일본처럼 저자세로 접근한 적이 없다. 위안부 합의도 따지고 보면 유럽이 옛 식민지와 맺은 합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양 제국들과 비교했을 때, 일본이 특별히 책임을 회피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많은 책임을 진 편이다. 일본 보수의 태도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대방의 감정을 외면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평행선을 달리는 감정 싸움과 힘겨루기 뿐이다. 그리고 그 무익한 싸움에서 불리한 건 우리나라, 정확히는 사과를 기다리는 피해자들이다.

새 정부가 반일 감정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문재인 정부처럼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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