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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람이 사회보험료를 많이 내는 이유

비스마르크 없는 비스마르크 모델

by 이완

독일 노동자는 사회보험료를 많이 낸다. 여기서 사회보험료란 한국의 국민연금보험료, 국민건강보험료처럼 사회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부과되는 기여금을 말한다. 일반적인 보험이 보험료를 많이 낼수록 많은 혜택을 주는 것처럼, 정부의 사회보험 역시 사회보험료에 따라서 차등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2024년에 자녀 없이 혼자 살면서 평균만큼 임금을 받은 경우, 독일 노동자는 사회보험료로 총임금의 20.7%를 납부했다. 이는 OECD에서 두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같은 조건에서 한국 노동자는 각종 사회보험료로 9.4%를 냈고, 영국 노동자는 '국민보험료'로 5.9%를 냈다.

반면, 또 다른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덴마크에서 노동자는 사회보험료로 소득의 1% 미만을 부담했다. 대신 모든 노동자는 소득 수준과 상관 없아 지방정부에 '노동시장세'로 소득의 8%를 냈다. 덴마크의 노동시장세는 복지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세라서 대우도 특별하다.

덴마크 정부는 국세와 지방세를 합쳐서 총소득세율이 52%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소득세율를 책정했을 때 54%가 나왔다면, 52%만 내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시장세는 제외된다. 다시 말해 중앙과 지방정부에 소득의 52%를 세금으로 내더라도 노동시장세 8%를 따로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덴마크가 노동시장세와 연계된 복지혜택을 따로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과 한국의 공적 연금은 보험료를 많이 낸 사람에게 더 많은 연금을 준다. 물론 저소득층은 보험료에 비해 많은 연금을 받기는 하지만, 그런 재분배를 거친 후에도 고소득자가 더 높은 연금액을 받는다.

덴마크는 각자가 납부한 보험료나 노동시장세액과 상관 없이 생활 수준이나 거주 조건에 따라 연금을 지급한다. 연금 뿐만 아니라 의료보장이나 공교육도 마찬가지다. 이런 복지체계를 베버리지 모델이라고도 부른다. 기여와 혜택이 서로 무관하다는 점에서, 덴마크의 노동시장세는 사회보장 재정을 지탱하지만 사회보험료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독일 노동자는 유독 높은 사회보험료를 내야 할까. 흔히 독일의 복지체계를 '비스마르크 모델'이라고 부르지만, 그 이름의 주인공인 제국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때문에 사회보험료가 높은 것은 아니다. 정작 제국수상 본인은 노동자에게 보험료를 걷지 않고 공적 보험서비스를 제공하려 했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자 탄압법을 제정했지만, 사회주의를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서, 비스마르크가 억압한 것은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노동운동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카이저를 정점으로 하는 오래된 위계질서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건 사람이었다. 그런 비스마르크에게 보통선거, 민주주의는 제국의 암세포였다.

비스마르크는 몽둥이만으로 제국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노동자가 삿된 민주주의 운동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충성스런 신민으로 남도록 하려면, 제국이 노동자의 이익과 복지에도 적극 신경써야 한다고 여겼다. 그것이 기독교 윤리에도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비스마르크는 민주주의와 무관한 사회주의 사상들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독일에는 마르크스주의 뿐만 아니라, 군주가 복지제도로 자본주의를 규제할 것을 주장하는 강단 사회주의 또는 국가state 사회주의 같은 다양한 사회주의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다른 사회주의들을 가짜라고 규정했지만, 딱히 근거는 없는 단어 독점일 뿐이었다.

19세기 유럽에서 사회주의는 계급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의미하지 않았다. 최초의 사회주의, 특히 마르크스주의보다 먼저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친 생시몽주의 학파의 사회주의는 최대 다수의 복지와 사회 진보를 촉진하는, 합리적인 사회설계를 의미했다.

사회주의자는 자유방임과 제한 없는 이윤 추구를 복지와 진보의 적으로 여겼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 원칙에 맞게 경제를 다시 조직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세세한 내용이 많이 달라서, 사회주의는 하나의 사상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기보다는 동음이의어에 가까웠다.

그런 점에서 비스마르크의 계획에은 사회주의적인 면이 분명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고용주와 국가가 재정을 전부 부담하고 노동자가 무상으로 보호받는, 단일한 공적 보험체계를 구상했다. 이 때 지방정부나 사보험의 영역은 사라지고, 오직 중앙정부에 의한 독점적인 보험 서비스만 남길 계획이었다.

국가가 기업의 이윤 일부를 거둬서 최대 다수의 복지를 위해 사용한다면, 그 성과가 사회주의자 관점에서 볼 때 미약하더라도 사회주의적이다. 비스마르크 본인도 자신의 계획을 '국가 사회주의'라고 명확하게 선언했다. 이 국가 사회주의를 통해, 비스마르크는 제국과 노동자가 공동의 이익을 공유하며 더 끈끈해지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초안은 많은 반발을 초래했다. 당시 독일 제국의회의 자유주의 우파와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국가 독점과 기업가의 높은 부담률에 반대했고, 그 결과 노동자에게 높은 보험료를 받아서 차등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회보험체계가 독일제국에 자리잡게 되었다. 비스마르크 모델은 비스마르크 없는 비스마르크 팀이나 마찬가지다.

비스마르크 없는 비스마르크 모델은 독일 뿐만 아니라 여러 복지국가의 기초로 자리잡았다. 이웃 오스트리아도 사회보험료를 굉장히 많이 걷는 편이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베버리지 모델과 비스마르크 모델을 동시에 채택하고 있다. 한국의 공적 연금제도 역시 비스마르크 모델에 기초한 국민연금과 베버리지 모델에 가까운 기초연금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사회보험료는 각국의 복지체계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자료
1. 박근갑, 사회민주주의와 자치행정 - 개념사로 다시 읽는 비스마르크 복지정치 -,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no.92, 2007.
2. 가스통 V. 림링거, 사회복지의 사상과 역사, 비판과대안을위한사회복지학회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1, 159 - 167p.
3. G. D. H. Cole, A History of Socialist Thought : Volume 1, London Macmiilan CO, 1953.
4. OECD, Taxing Wages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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