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은 소중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진보주의 9화

by 이완

지방의 제조업계는 이주민 없이 버틸 수 없어 보인다. 사람들이 수도권과 서비스업으로 몰리는 것도 문제지만, 인구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미 전체 인구 100명 중 5명은 외국인이고, 전라남도나 경상북도 등에서는 다문화 학생이 교실의 5분의 1을 채우고 있다. 제조업 이탈과 고령화가 금방 해결되지는 않을 테니, 우리나라가 살아남으려면 이민자와 함께 사는 일이 필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금 바로 국경을 열고 제한 없이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할까. 체취도, 식성도, 종교도, 가치관도 다른 사람들이 한꺼번에 대규모로 들어와도, 우리나라가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을까. 스웨덴을 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2023년, 스웨덴 군은 치안 업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힘만으로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총기 난사와 갱단 활동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스웨덴은 1990년대부터 정치적 망명자 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찾는 동유럽인, 전쟁을 피해 도망친 중동 난민을 최대한 받아들여 왔다. 그 결과 지금 스웨덴 인구 천만 명 중 20%는 외국 출생자다.


문제는 스웨덴이 내국인의 불만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이민자에게 기회를 줄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이민자가 빈곤과 사회적 단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자녀는 범죄조직에 가담했다. 그 반작용으로 스웨덴 청년과 청소년은 이민자를 향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민자와 내국인이 서로에게 총을 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혼란을 틈타서, 반이민 포퓰리즘 정당이 원내 제2당으로 올라섰다.


스웨덴 뿐만 아니라 이민에 관대했던 모든 유럽 국가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민에 개방적인 나라들은 기술도 자본도 없는 이민자와 난민을 대규모로 받아놓고, 그 이민자에게 최저 생활과 일자리를 보장할 방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자국민도 충분한 기회를 누리지 못해서 실업과 빈곤을 겪는데, 외국인에게 그런 혜택을 준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납득해 줄까.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의 소외감, 낯선 사람에게 둘러쌓인 내국인의 불안감, 그 둘이 충돌해서 발생하는 범죄와 테러, 정치 극단화 등. 선진적이라는 유럽도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그런 대비 없이, 한꺼번에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면, 과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비빔밥도 서로 어울리는 재료를 잘 손질해서 섞을 때 제대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아무거나 날 것 그대로 섞으면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음식물 쓰레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처럼 종교와 민족이 너무 다른 곳은 심각한 내전까지 겪어야 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갈등을 그저 인종차별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공통점이 더 많은 사람과 조화롭게 살 수 있기 마련이다. 서로 닮은 점이 많을수록 상대의 행동과 반응을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언어라는 공통점이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의 금기나 권리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내국인이라도, 지역끼리, 성별끼리, 계층끼리 더 쉽게 공감한다. 서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애초에 이혼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경 개방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코리안 드림을 믿고 들어온 이민자에게는 목숨이 걸린 문제다. 내국인에게는 평화로운 일상이 걸린 문제다. 이민자는 꾸준히 받아야 하지만, 내국인이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닮은 점을 늘려나가는 동화 정책과 속도 조절이다.


"사회 통합은 그 속도가 느리고, 통합 대상 규모가 작을 때 보다 쉽게 이뤄진다. 이는 유입 인구를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의 합리적 근거가 된다."

- 데이비드 굿하트,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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