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공급보다 중요한 일
이재명 정부가 또 진통제 같은 정책을 구상하는 듯하다. 물론 생리대 가격 폭등이 사실이라면 공적으로 다룰 만한 사안이다.
생리대는 까다로운 물건이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은 여성이 자신에게 맞는 생리대, 자극적이지 않고 안전한 생리대를 찾기 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하고 있었다. 민감하고 밀폐된 부위에 밀착시켜야 하는 물건이다 보니, 간혹 생리대가 염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 급한 상황이 아니면 매우 신중하게 고르는 듯하다.
개인의 위생은 건강보험 재정, 공중보건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국민의 생필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힘쓴다면 사회주의자 입장에서 환영할 일이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제84조가 규정한 것처럼, 경제의 첫번째 목표는 국민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재산권은 그 다음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안에서 보장된다."
- 대한민국헌법 제1호(제헌 헌법), 제84조
그런 점에서 여성이 생리대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면 정부가 나설 만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문제는 우선순위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가 민간업체에 위탁해서 생리대를 생산한 다음,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까지 이야기했다. 방법 자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공기업이나 민간 업체에 생산 할당량을 지정하고 기한 내에 달성할 경우 인센티브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페널티를 주는 식의 생산 통제가 가능하다. 게다가 생리대는 수요도 확실하고 그 수요를 어느정도 예측할 수도 있다.
전례도 있다. 미국과 유럽 정부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전시경제체제를 가동하며 전쟁 물자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소비재까지 공급한 적 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봉쇄기에 조달청을 통해 마스크 생산을 통제해 본 적 있다. 1970년대에는 더 큰 계획으로 중화학 공업도 일으켜 세웠다. 서구의 전시경제와 발전국가 사례가 보여주듯, 단순한 생필품 정도는 정부도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위탁 생산은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라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까지 해야 할 상황일까. 한국 소비자원 참가격 자료를 보면, ‘좋은느낌 유기농순면커버 울트라슬림 날개 중형’은 개 당 413원이다. ‘쏘피 바디피트 볼록맞춤 중형’은 개 당 336원이다. 2025년 12월 기준이다.
영국 기업 ASDA가 판매하는 Always 시리즈 제품 중 제일 비싼 것은 개당 27.1펜스, 538원 정도이고, 가장 싼 것은 개당 12.5펜스, 248원 정도다. ASDA에는 개 당 100원까지 내려가는 제품도 많지만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오늘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가격에 환율을 곱한 것이다.
이렇게 숫자만 두고 비교했을 때, 과연 우리나라 생리대가 영국보다 얼마나 비싸다고 해야 할까.
가격을 비교하려면, 최소한 성분이라도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의 평균 생리대 가격이 더 높은데 그만큼 좋은 재료를 쓴다면, 부당하게 비싸다고 보기 어렵다. 품질이 중요한 물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비교한 통계는 아직 찾지 못했다. 언론에는 막연하게 해외와 국내 생리대의 평균 가격을 나열해 놓은 통계가 주로 보일 뿐이다.
나라 안의 다른 물건과 비교하면 어떨까. 2000년과 2025년을 비교했을 때, 전체 물가는 84.7% 올랐고, 생리대는 91.4% 올랐다. 그런데 위생용품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비누 가격은 131.9% 올랐다. 도시철도 요금은 무려 183%까지 치솟았다. 관점에 따라서 생리대보다 중요한 생필품이라고 할 수 있는 라면 가격도 127.4%나 상승했다. 과로하는 대학원생과 직장인의 합법 각성제인 커피도 139.4%나 비싸졌다.
이렇게 25년이라는 기간을 놓고 보면, 생리대가 다른 생필품에 비해 특별히 비싸졌다고 볼 수 없다. 생활 물가 전반이 꽤 가파르게 올랐다.
흔히 생리대 시장이 독점 상태라서 가격이 오른 것 같다고 추측하지만, 이것도 근거가 부족하다. 일단 각 생리대 제품 별로 원자재 가격과 이윤이 얼마인지 정확히 측정한 자료가 없다. 당장은 폭리의 증거라고 해 봐야 유한킴벌리 등 소수 대기업의 시장점유율 뿐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인터넷에서 해외 제품을 편하게 구할 수 있는데다가 유통 업체의 독과점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생리대 생산 기업이 여성을 착취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사실, ‘비싸다’는 말은 지극히 상대적이다. 똑같은 10억 원 어치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공짜로 얻은 것일 수 있고 누군가는 평생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생리대도 마찬가지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같은 가격이라도 부담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생리대에 붙은 가격표가 아니라 통장에 기입된 소득이 아닐까.
우리나라 여성은 전반적으로 가난하다. 국가데이터처에서 ‘평균 근로·사업소득, 중앙값’ 자료를 보면, 2024년 19 - 34세 청년 중에서 남성의 연 소득 중앙값은 2,545만 원이었고, 여성은 1,980만 원이었다. 여성의 중앙값이 약 600만 원 더 적다. 한창 일할 나이대인 40 - 44세 중년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진다. 그 나이대 중년 남성의 연 소득 중앙값은 4,931만 원이었고, 여성은 2,580만 원이었다. 둘의 격차가 약 2,400만 원이다.
산업별로 따져도 격차가 뚜렷하다. ‘금융 및 보험업’에서 일하는 대졸자의 경우, 남성의 평균 근속연수는 7.6년이고 여성은 9.5년이다. 월 총근로시간은 각각 155시간과 152시간이다. 그런데 남성의 월임금총액은 759만 원이고, 여성은 637만 원이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의 경우, 남녀의 근속연수은 거의 같고 남성의 월근무시간이 10시간 정도 더 많다. 그런데 남성 대졸자는 월 697만 원을 받고 여성 대졸자는 월 425만 원을 받는다. 둘 다 육체노동이 아님에도, 남녀 평균 임금이 100만 원 이상 차이난다.
이게 생리대 가격표보다 더 중요한 원인 아닐까. 격차의 원인이 무엇이든, 여성의 소득이 전반적으로 낮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여성은 속옷도 하나 더 사야 하고 생리대까지 챙겨야 하니, 생활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면 좀 더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손 봐야 할까. 정부가 직접 생리대를 무상으로 공급하면, 당장 빈곤한 여성은 생활비 부담을 덜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은 해결되지 않는다. 빈곤한 상태는 그대로인데 생리대 가격만 낮아지고 나머지가 계속 오른다면, 주관적인 생활비 부담은 원상복귀된다.
‘민간업체에 위탁해서 생산하고 무상으로 공급한다.’ 그 말은 정부가 여성의 생리대 값을 대신 지불하겠다는 이야기다. 즉 재정이 드는 일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나 일자리 질 저하 같은 근본 문제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청년 미래 적금 등 조건이 까다롭고 혜택이 소수에게 흘러가는, 자잘한 복지제도에 예산을 흩뿌리고 있다. 재정에는 어떤 식으로든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언제 무슨 돈으로 해결할 계획일까.
생리대 무상 공급은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과 비슷하다. 우선순위가 틀렸다.